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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포스코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것

“어렵다”는 행정, “보완하라”는 정치
700억 회수로 시작된 구조적 위기
책임은 비켜가고 절차만 앞세웠다
장인화 회장은 무엇을 결단했나
기업시민 리더십, 지금 시험대에

국방부가 “전력 미비로 곤란하다”고 보고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보완하면 될 일 아닌가.” 해병대 작전통제권 환원 문제를 둘러싼 이 장면은, 행정의 언어와 책임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조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권한을 미루는 대신, 권한을 전제로 국가가 책임지고 조건을 채우겠다는 선택이었다. 조건을 이유로 미루던 논리에서, 권한을 전제로 책임지는 결단의 논리로 방향을 바꾼 상징적 장면이었다.

 

 

정릉골 재개발 사태에서 조합원들이 포스코를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함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어렵다”, “우리 책임은 아니다”, “절차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은 반복되지만, 그래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선 칼럼 「“포스코 대부업 진출?”…비아냥을 듣는 이유」에서 짚었듯, 정릉골 사태의 출발점에는 시공사 포스코이앤씨가 입찰보증금 700억 원과 이자 약 20억 원을 회수해 간 구조가 있다. 총회를 전제로 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절차의 적정성과 도정법 취지에 부합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 결과 조합은 자금 완충 장치를 잃은 채 이주비 이자 연체 위기에 내몰렸고, 이 과정에서 시공사는 사실상 ‘손 안 대고 코 푸는’ 위치에 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포스코이앤씨가 임동하 조합장 측에 보낸 내용증명 답변서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회사의 공식 입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책임 있는 해법 제시라기보다 본질을 비껴간 자기방어 논리의 정리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답변서의 핵심은 단순하다. 사태의 원인은 조합 내부 분쟁과 대표권 공백이며, 성북구청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역시 이를 우려해 보증을 중단했으므로, 현재의 자금 집행 지연은 포스코의 귀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겉으로 보면 논리적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의도적으로 건너뛴다. 그렇다면 조합이 이처럼 취약한 상태로 내몰리기 전, 시공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이다.

 

포스코는 답변서에서 “입찰보증금 700억 원 및 기상환금 550억 원 문제는 현재의 이주비 이자 집행 문제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시각에서 보면, 이 대목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조합이 자금난에 빠진 근본 원인이 바로 그 보증금 회수 구조에 있었기 때문이다. 완충 장치를 먼저 제거해 놓고, 그 이후 발생한 위기를 두고 “별개 사안”이라고 말하는 태도가 과연 책임 있는 자세인지 의문이 남는다.

 

특히 답변서 6번 항목은 이런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포스코는 조합이 요청한 긴급 자금 대여에 대해 “조합 총회의 사전 의결이 필요하고, 대표권이 불명확해 법적·절차적 검토가 선행돼야 하며, 1월 26일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못 박는다. 절차를 강조하는 태도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 절차 논리가 언제, 누구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느냐다.

 

입찰보증금 700억 원을 회수할 때는 총회 절차의 중대성이 사실상 무시됐다. 그러나 조합원 400여 명이 신용불량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국면에서는, 그 총회 절차가 갑자기 넘을 수 없는 절대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것이 조합원들이 포스코의 태도를 ‘원칙’이 아니라 ‘선별적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더구나 답변서는 본 사안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내용들을 다수 소환한다. 조합 내부 분쟁의 횟수, 구청 공문, 허그의 우려, 임시이사 선임 지연 등은 모두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포스코가 조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근거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조합 내부로만 밀어 넣고, 시공사로서의 판단과 역할은 흐릿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전력이 부족하다면 보완하면 될 문제”라는 말의 핵심은, 조건 부족을 책임 회피의 명분으로 쓰지 말라는 데 있다. 권한과 책임을 분리하지 말고, 책임질 위치에 있는 주체가 해법을 제시하라는 요구다.

 

정릉골 사태에서 포스코, 더 정확히 말해 포스코그룹과 장인화 회장에게 던져지는 질문도 같다. 조합 내부가 혼란스럽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공동사업자이자 가장 많은 정보를 쥔 시공사는, 그 혼란이 조합원들의 신용 붕괴로 이어지기 전에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가.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문장보다 먼저 나와야 할 것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겠다”는 답변이 아니었을까.

 

포스코가 강조해 온 ‘기업시민’과 ‘상생’은 위기 상황에서 더 엄격하게 시험받는다. 조합원 400여 명이 신용 문제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 그럼에도 시공사가 끝내 완충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적 책임 이전에 시공사로서의 자격과 동업자 정신을 묻는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시공사인가”, “이제는 결별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포스코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것”은 거창한 정치 수사가 아니다.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어려움을 전제로 책임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태도다. 미루는 논리에서 결단의 논리로 전환하는 용기다. 정릉골 재개발 사태는 지금, 바로 그 리더십을 포스코와 장인화 회장에게 묻고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