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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수로 만나는 세계명화]피테르 브뢰헬 〈아이들 놀이〉

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은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과 같은 사이즈로 작업한 세계명화 작품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브뢰헬은 누구인가
피테르 브뢰헬은 1525년 네덜란드 브뤼겔에서 출생해 1569년 브뤼셀에서 47세에 사망했다. 안트베르펜과 브뤼셀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낸 피테르 브뢰헬은 북유럽 전통의 사실성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엄격한 선의 묘사를 결합하여 독자적 화풍을 선보였다.

 

브뢰헬은 화가, 소묘가, 동판 밑그림 화가로 쿠케 반 알스트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26세 때 안트베르펜의 화가조합에 등록했고, 얼마 후 나폴리, 시칠리아, 로마 등을 돌며 공부하고 여행하며 30세에 귀국했다. 이 여행 중 알프스 산중의 풍경을 그린 소묘로 12장의 동판화집이 발간됐고, 이후 브뢰헬은 풍경화가, 동판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회화 장르 새 분야 개척
1563년, 41세 때 알스트의 딸 마이켄과 결혼하면서 브뤼셀로 이주했고, 농민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환상 화가이자 기괴함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네덜란드의 거장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뒤를 따르기도 했던 브뢰헬은 16세기 풍경화를 전통적인 역사화와 종교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는 네덜란드 농민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회화 장르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사에 한 획
피테르 브뢰헬은 플랑드르의 전통적 기법을 이어가는 한편 새롭고 독특한 시선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간과 계절의 변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브뢰헬은 1565년경부터 각 달의 모습을 담은 계절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브뢰헬의 세 작품 〈반역 천사의 추락(1562)〉, 〈죽음의 승리(1562)〉, 〈미친 메그(1562)〉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에게서 받은 영향으로 수많은 등장인물과 풍부한 색채가 사용되었고, 환상적이다. 반면 그의 마지막 작품인 〈사계절(1565)〉 연작은 현실에 이상을, 네덜란드풍에 이탈리아 느낌을, 활동적이지만 안정감을 결합해 조화롭다.

 


460년 전 네덜란드의 90가지 놀이
이 작품 〈아이들 놀이〉는 그가 즐겨 그리던 신화, 속담, 종교와는 관련 없이 ‘아이의 시각’으로 순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오로지 유아기부터 소년기의 아이들 250여 명만이 등장한다. 브뢰헬은 작품을 통해 마을의 광장과 대로, 강과 들판을 배경으로 굴렁쇠 굴리기, 꼬리잡기, 술래잡기 등 당시 아이들의 다양한 놀이 90여 가지를 재현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약 460여 년 전의 네덜란드 아이들이 즐기던 갖가지 놀이가 그야말로 펼쳐져 있다. 그런데 문득 이 아이들의 놀이가 몇십 년 전 우리네가 즐기던 놀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징어 게임’도 그중 하나다. 요즘은 장난감과 게임기, 핸드폰을 가지고 놀기에 이런 모습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 아쉽다.


굳은 표정으로 놀이하는 아이들
앞서 언급했듯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린이들인데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다. 브뢰헬의 그림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는 ‘놀이 행위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그린 게 아닐까’라는 단상도 든다.

 

작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마을의 건물과 인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언뜻 복잡하지만 뒤엉켜있는 듯 보이는 어린이들의 의복 묘사에서 빨간색, 짙은 노란색, 파란색 등의 주요 색채들이 반복적으로 구사됨으로써 통일감과 질서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