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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적어도 고립되지는 말아야겠기에

변화는 스스로 모자람을 인정할 때 만들 수 있다

한 골프계 원로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요컨대 ‘버드 아이’를 넘어 ‘호크 아이’ 수준으로 업계를 조망하며, 작은 일부분에 집착하기보다 거대한 흐름과 방향을 읽고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린피 논란’ 같은 걸 미디어가 다루면 그야말로 ‘좁쌀’이라고 했다. 그건 시장 논리로 돌아가도록 하면 되는 것이고, 미디어는 ‘골프장 공급을 늘려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내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는 거였다.


매년 창간호 마감이 다가오면 이런 얘기들이 유독 귀에 꽂힌다.
우리는 창간 월이 10월이다. 골프 시즌이 어느 정도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시기기도 하고, 이미 9월이면 10월(때론 11월을)을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이맘때면 남들보다 조금 먼저 ‘연말’의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꼭 그즈음에 이런 얘기에 꽂히게 된다. ‘미디어의 역할’ 말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 ‘골프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를 생각해봤다. 소비자들이 “그린피가 비싸다”고 하소연하면 그 목소리를 내주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이다. 골프장이 이에 항변한다면 그 해명을 싣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하면 비판하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이고, 시장 논리는 아니지만 과감히 칼을 빼든 거라면 지지하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이다.


결국, 적어도 현황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게 미디어의 역할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급을 늘려라!’는 ‘주장’을 전할 수는 있지만, 그 반대의 주장도 전하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 아닌가. 독자가 정보를 접하고, 익힐 수 있게 돕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한 팩트와 다양한 의견을 성실히 제공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결론이다. 흔히 미디어의 속성을 ‘중립’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미디어가 완전한 중립을 지키는 건 어렵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어려울 것이다. 산업이라서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미디어는 한마디로 ‘약하다.’ ‘약해지고 있다’고 하기엔 이미 약하다.


레거시 미디어가 아젠다 세팅을 하던 시절은 아니다. 미디어가 각자 편향된 논조를 보인다는 것도 독자들은 다 안다. 그래서 이미 약한데 더 약해지는 중이다. 갈라치기가 횡행하니 갈라진 여론은 자기들끼리 갈라파고스화 된다. 결국 더 자극적인 키워드가 아니고서는 경쟁에서 밀리게 된 미디어는 더욱 편향적이 되기 일쑤다.

 

심지어 골프 미디어 업계는 다른 곳보다 더 정체되고 지체됐다는 감상을 자주 느낀다. 월간지 시장이 작아진 만큼 종사자도 인재 풀도 한없이 쪼그라든 게 현실이다. 그러니 더욱 정체되고 지체되며 악순환을 반복한다. 

 

심지어 1990년대 전문지 황금기의 스탠스로 2023년을 대하니 현장에서의 괴리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와 변화하자니 따라잡아야 할 진도는 한도 끝고 없어보이니 그저 정체되고 고립된다. 

월간지를 매달 만들어내는 한 사람으로서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를 인정하고 변하려고 노력해볼 뿐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지체되니까. 적어도 고립되지는 말아야겠기에. 28주년 창간호에 부쳐 새로운 답을 내지는 못했어도, 다시금 현황을 냉철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 ‘인정’에서부터 미래는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골프가이드 10월호, 편집장 박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