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앙얼이 너 시방 무시라 혔남?”
어둠이 꺼꾸리의 뒤집힌 눈에 잠시 괴어 든다.
“빙신 달밤으 체조헌다고야?”
다시 치켜든 꺼꾸리의 눈이 오른손에 쥔 비수처럼 퍼렇게 번뜩인다.
“비이 빙신 유우 육갑허고 자아 자빠졌네 이 새끼!”
앙얼의 입에서 또 “빙신”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꺼꾸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손아귀의 비수를 다시 치켜들었다.
“아나 어여 따라, 내 목을!”
앙얼이 왼고개로 머리를 틀고 움츠린 자라목을 길게 뻗어 꺼꾸리의 턱 밑 들이댄다. 돼지 멱을 따듯 내 목을 따 보라는 배짱이다.
“으따 묻허냐 새꺄! 언능 요 모가지 꽉 따번지랑께!”
꺼꾸리가 비수를 머리 위로 치켜들자 앙얼의 태도가 칼날처럼 선다. 앙얼의 살쩍머리가 갯바람에 흩날리는 사이 허공에 뜬 꺼꾸리의 손이 허리춤 아래로 내려갔다.
“빙신 육갑 다 끝났댜?”
앙얼이 봉두난발 머리채를 바로 세우며 묻는다.
“아니 이 새끼가 오늘 깨팔러가고 환장을 혔남?”
꺼꾸리가 당장이라도 앙얼의 목을 따버릴 듯 비수를 흔들었다. 머리 위로 들었던 칼이 허리춤 아래까지 한 번 쓸려 내려갔다가 번개처럼 다시 치솟아 앙얼의 목덜미에 닿았다.
“야 이 새꺄, 너 참말로 뒈지고 자퍼서 환장을 혔냐, 엉?”
꺼꾸리가 울부짖으며 위협한다. 외눈깔에서 눈물이 찔끔찔끔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 호로 상놈으 새끼야! 나아 나가 워쩌다 눈 비잉 빙신이 돼얐는지, 누우 누구보담 잘 아는 새끼가 끄칫허믄 비이 빙신 빙신 해쌌는디, 오늘은 참말로 눈 딱 감고 요 모가지 꽉 쑤우 쑤셔불꺼나?”
“지발 부탁이다. 후딱 쑤셔부러라! 에미 애비도 읎고, 처자식도 읎는 나, 이 풍진 시상 고만 하직허고 자픈께 싸그 돼야지 모가지 따득기 확 따벤지라고!”
서슬 퍼런 비수 끝이 목울대를 찍기 직전인데도 앙얼은 태연하다. 오히려 목청을 더 높인다.
“빙신 육갑허덜 말고 언능 쑤시라고 새꺄! 접때 너 왕포서 뱃놈 하나 칼질혀서 모가지 따득기 말여!”
앙얼의 대찬 대거리에 꺼꾸리가 잠깐 멈칫한다. 목에 대고 있던 비수 끝이 흔들리더니 그 손아귀가 스르르 풀려 칼이 아래로 떨궈진다.
앙얼은 안다. 꺼꾸리가 눈을 잃은 그날부터, 죽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남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꺼꾸리가 힘겹게 가래침을 긁어모아 시누대 대숲으로 “퉤!” 하고 뱉었다. 한 발 거리도 안 되는 댓잎에 떨어진 가래침 위에도 밤이 내려앉는다.
“아까 너, 수성할맬 워쪄서 개양할매라 불르냐고 물었지야?”
앙얼이 묻지만 꺼꾸리는 얼김에 꺼내든 비수를 홑바지 뒷괴춤에 집어넣고 말이 없다.
“나도 니놈 맨치로 낫 놓고 기윽자도 몰리는 눈 뜬 봉사라 아는 것이 묻 있것냐마는, 그리도 귀머거린 아니라 에러서부텀 여그저그서 줏어들은 풍월을 짜맞춰 목숨은 부지허고 사는 재주가 있다봉께 시상 물정을 너보다 쪼까 더 안다고 생각허는디…너 작년 끄르끄 법성포 목냉기서 해적질 허다가 칼부림 났을 적, 맞빡에 피도 안 말린 에린놈이 베짱 좋기 나서가꼬 나헌디 맞짱 한 번 뜨자고 덤볐던 일 기억나남?”
앙얼이 묻지만 꺼꾸리가 입엣말로 투덜댄다.
“자다가 봉창 뚜디리는 것도 아니고, 이 새끼가 시방 무신 소릴 씨부렁거리는 것이여?”
꺼꾸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앙얼이 버럭 묻는다.
“너 시방 무시라고 혔냐?”
“머라허긴 새꺄, 미친놈 개나발 부는 꼴 봉께, 암만혀도 낼 비올 것 같다고 혔제.”
“구렝이 담 넘어가는 소리 작작허고, 아까 주둥패기 놀린 대로 야글 혀보랑께!”
“뜬금읎이 작년 끄르끄 법성포 목냉기 해적질 야글 으째 끄내는디?”
“그럴만헌 일이 있응께 그라제.”
“무신 일인디?”
“고건 잇다 알켜줄턴께, 묻는 야그에 답이나 혀보라고 새꺄!”
꺼꾸리를 다그치는 앙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