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진도 출신 가수 설화가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송해아트홀에서 열린 ‘신도림단풍축제’ 무대에 올라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노래했다. 신도림단풍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구로구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진행된 이번 축제는 25일(토) 오후 2시 송해아트홀에서 막을 올렸다. 행사장은 공연과 체험부스, 포토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져 지역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무대에서는 버스킹, 마술쇼, 우쿨렐레와 하모니카 공연 등이 이어졌으며,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홍원빈, 김아영, 설화가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장성호연가’로 알려진 가수 설화는 이날 무대에서 자신의 곡 ‘행복한가요’ 등을 열창하며 축제의 ‘가을愛’를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특히 설화의 신곡 ‘장성호연가’는 전남 장성호의 풍광과 고향의 정서를 담아낸 노래로, 현장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편, 송해아트홀은 ‘예술로 시민의 삶이 풍족하고 아름답게 변하는 공간’을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통해 일상 속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국민 MC 송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이곳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창작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한민족의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를 잇는 새로운 문화 플랫폼이 탄생했다. 오는 11월 창간을 앞둔 월간 ‘아리랑’이 이미 문을 연 ‘호남민심TV’에 이어, 10월 20일 글로벌 영상채널 ‘네오아리랑TV(NeoArirangTV)’를 개설했다. 이는 한민족의 노래와 민심의 소리, 그리고 K-Culture의 혼을 세계와 공유하려는 문화적 선언이다. 월간 ‘아리랑’은 단순한 매체가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잇는 한류의 통로다. 각 호에 실릴 칼럼과 기획 기사들은 민족의 뿌리와 정신,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을 문화적 서사로 엮어내며 전통의 숨결과 현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낼 예정이다. ‘네오아리랑TV’는 아리랑 정신을 디지털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첫걸음이다. 이 채널은 K-Culture의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국내 각 지역의 예술가와 문화상품을 영상으로 소개하며, 한국적 정서를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할 계획이다. 현재 월간 ‘아리랑’은 ‘호남민심TV’, ‘네오아리랑TV’, ‘한류난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호남민심TV’가 지역의 현장을 생생히 전하고, ‘한류난장’이 전통과 한류 콘텐츠를 실물 체험으로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인도네시아신할랄산업협회(CNHI) 회장인 이광연 회장은 한국 기업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주식회사 피케이씨엔하이(PKC&Hi) 대표이사로서 산업과 기업, 교육을 연결하며 다각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이 회장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시장 진출 전략 수립을 위해 현지 맞춤형 컨설팅과 실무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할랄 산업 관련 규제와 인증 체계를 정확히 분석하고, 기업이 현지 법규와 문화를 준수하며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지원한다. 그의 노력은 한국 기업이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인증과 신뢰 구축의 전문가 이 회장은 할랄 인증 제도의 정비와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며, 단순한 문서적 인증을 넘어 기업과 소비자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품질 보증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그는 “할랄 인증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가 신뢰를 공유하는 안전망”이라며, 교육과 컨설팅을 병행해 기업의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높이고 있다. 이 회장은 다양한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현지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경허선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녹두장군 전봉준과 뜻을 같이하며 시대의 변혁을 꿈꾸었으나,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경허연구소’ 홍현지 소장은 경허선사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경허선사가 녹두장군 처형 뒤 군산시 옥도면의 비안도에서 몸을 숨겼다는 사실을 한 문헌에서 발견했다. 지난 2012년, 근대 한국 선불교 중흥조인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유묵을 한자리에 모아 특별기획전이 열렸다. 경허선사의 진영과 인장을 비롯해 1900년대 범어사에 주석할 당시 제작된 총섭방함록, 태고 보우 이후 전승되는 법맥을 기록한 등등상속, 혜월혜명 선사 전법게, 서간문, 친필 등을 전시했다. 이 전시회에서 단양 송림사 벽송 상묵 스님이 제공한 서간문 13편도 선을 보였다. 그중 6번째 서간문인 ‘답 서석사’에 ‘비안도’라는 섬 이름이 등장한다. 이 문헌을 발견한 홍 소장은 곧바로 비안도를 답사했다. 섬 주민 정정근 씨를 통해 경허선사의 은신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상묵 스님이 제공한 서간문 13편엔 경허선사가 서석사(徐碩士)에게 보내는 답서(答書) 외에 녹두장군에게 거사를 독려하는 서간문과 조카인 녹두장군의 둘째 아들 전용현에게 보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1884년, 변산반도 앞 칠산바다에서도 조선왕조가 저물고 있었다. 갑신년 추석 명절이 지난 음력 팔월 열이렛날 저녁 무렵이었다. 바다는 숨을 죽였고, 하늘에서는 불구름이 흘렀다. 칠산바다의 불구름은 구름이 아니었다. 하늘이 토해낸 피멍, 바다가 길어 올린 불길이었다. 수평선은 황혼에 젖고, 은빛 바다는 누런 쇳빛으로 변했다. 물비늘이 번들거렸고, 조기떼가 떠난 뱃길엔 허망한 파문이 길게 흩어졌다. 칼끝 같은 갯바람이 살결을 스칠 때면, 피 냄새가 날 듯했다. 남녘 바다 끝에서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았다. 쇠와 불, 증기가 뒤엉긴 괴물이 나타났다. 쇠로 된 바다의 괴수, 화륜선(火輪船)이었다. 조선의 바다를 찢고, 정적을 가르며 다가왔다. 그 굉음과 연기가 칠산바다의 잠든 해신들마저 흔들어 깨웠다. 개헤엄을 치는지, 송장헤엄을 치는지 모를 느린 몸짓으로, 화륜선은 법성포 앞바다를 지나 위도 앞 임수도 근해에 이르렀다. 변산반도 적벽강 죽막동 갯가 절벽 위, 수성당 인근 대숲에 두 사내가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도 왕등도 출신 앙얼과 고군산 비안도 출신 꺼꾸리다. 올해 서른셋, 동갑내기인 이들은 조운선을 노리고, 고깃배를 털
지난여름과 가을, 강원도 강릉은 큰 물난리를 겪었다. 홍수가 아니라 가뭄 때문에 강릉 시민들의 일상은 참담했다. 강릉엔 4개월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일반 가정의 제한 급수도 큰 문제였지만 학교에서는 개수대 수도꼭지를 잠그고, 공공 화장실은 문을 닫았다. 강릉을 포함한 동해안 지역이 자주 가뭄을 겪는 이유는 태백산맥 때문이란다. 수증기를 품은 먹구름이 태백산맥을 넘지 못해서 동해안 지역의 가뭄이 잦다는 것. 속초와 강릉은 가깝다. 두 도시의 거리는 약 60㎞. 속초 역시 강릉처럼 태백산맥 탓에 가뭄을 자주 겪는다. 그런데 올해 속초의 물 사정은 강릉과 달랐다. 강릉은 마실 물도 없어 고통을 겪은 반면, 속초는 수백 톤의 물을 소비하는 물축제도 열었다. 강릉과 속초는 동해안의 인접한 도시다. 두 도시의 물 사정이 이렇게 판이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단다. 속초는 가뭄에 대한 대책을 오래전부터 착실하게 준비했다. 바다로 흘러드는 지하수를 담아 두는 지하댐도 만들고, 암반을 뚫어 지하수를 확보하는 한편, 낡은 상수관 교체 사업 등을 통해 물의 유실을 막았다. 차근차근 가뭄 대책을 마련한 속초와 달리 강릉은 제대로 된 가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2008년 1월 14일 문을 연 ‘지산아카데미 고시원·독서실(이하 지산아카데미)’은 전북 청년들에겐 ‘희망의 거점’이었다. 당시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의 고시원에는 월 120만~150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을 위해 건축가 백승기 박사는 ‘월 30만 원이면 먹고 자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전주에 만들었다. 지산아카데미는 지난 17년 동안 1천여 명의 공무원과 수많은 자격증 합격자를 배출하며, 전북 청년들의 꿈을 키워온 공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빈 공간의 재탄생, ‘한켠 전주’ 2025년, 지산아카데미 건물은 ‘한켠 전주’라는 새로운 이름과 기능을 얻었다. ‘한켠’은 ‘마음 한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품었다. 과거의 공부방이 디지털 세대를 위한 워케이션과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문화 교류의 허브로 다시 태어났다. 2층엔 워케이션 라운지, 영상 작업실, 회의실, 무비클럽이 꾸며졌다. 5층은 크리에이터용 동영상 스튜디오와 워케이션 공간이다. 3·4층엔 단기·중기 체류형 레지던스가, 6층엔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와 공유주방 ‘안부(安富)’가 들어섰다. 옥상은 루프탑 문화행사, 공연, 교류의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부안의 발전을 탐구하고, 희망찬 비전 실현을 기치로 내건 ‘부안발전포럼’이 지난 8월 1일 출범했다. 대표는 김양원 전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사무처장. 김 대표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부안·김제·군산을지역위원회 민생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포럼 출범식에서 김 대표는 “부안군은 현재 인구소멸 위험지수가 ‘매우 위험단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인 분석과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부안발전포럼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주민 삶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지역의 민·관·학·산이 함께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의 낙하산도 아니고, 사사로운 정치적 계산도 없다. 오직 지역을 위한 실용적 정치, 상식과 양심에 맞는 정치만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주산면 돈계리 출신이다. 부안초, 삼남중, 전주 영생고, 고려대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방대학원 안보과정과 KDI 국제정책대학원을 수료한 ‘행정의 달인’이자 ‘투자유치의 전문가’다. Q.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A. 행정고시는 결코 나에게는 출세의 수단이 아니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행시를 택한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새싹 농부’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진안군 농어민위원장 천춘진 박사는 부귀면 신정리 출신으로 1971년생이다. 천 박사는 진안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장승초등학교와 진안중학교, 전주농림고등학교 그리고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을 차례로 졸업했다.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경농업대학에서 10년간 학업에 정진했다. 동경농업대학원에서 채소생리생태학분야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에 걸맞은 직장도 잡았다. 일본의 친환경 농자재 회사인 가와다연구소에서 2년간 근무했다. 유학 후 12년 만인 2004년 귀국해 고향인 진안에 귀농했다. 새로운 농민운동과 농업에 전념해 대한민국 6차 산업을 선도했다. 2021년엔 신지식농업인상을 수상했다. 귀농 후, 성공이 보장되는 교수직과 연구소 연구원 제안도 받았지만 마다하고 묵묵히 농부의 길을 걸었다. 농부의 길을 탄탄하게 다진 뒤, 지금은 한국농수산대학 장기현장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천 박사는 새싹을 통해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자칭타칭 ‘새싹 농부’라 불린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애농’. 농부의 길은 무모한 도전이고 바보 같은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조선 중기, 가장 뼈아픈 국난의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문제작 ‘유성룡 양산숙’이 최근 출간됐다. 출판사 ‘매거진U’가 펴낸 이 책은 ‘난세의 명재상’, ‘임진왜란의 영웅’, ‘징비록의 저자’로 추앙을 받아온 유성룡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430여 년간 이어져 온 역사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자는 역사 전문가인 양성현 작가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내일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역사와 인물 중심의 글쓰기에 전념해 온 양 작가는 ‘유성룡 기축옥사’, ‘다시 보는 임진왜란’ 등을 통해 왜곡된 역사 속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왔다. 신간 ‘유성룡 양산숙’은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기존 통념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조선 인구 절반 이상이 사라진 참혹한 전쟁 속에서, 누가 나라를 망쳤고, 또 누가 진정한 영웅이었는지를 되묻는다. 430여 년간 주류 권력이 덮어온 역사적 실체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수십 년 간 사료 분석을 통해 역사적 실체에 접근한 양 작가는 “유성룡은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다. 그는 개혁을 막고 전란을 키운 장본인”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유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 개혁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