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5.7℃
  • 구름조금강릉 5.0℃
  • 박무서울 7.0℃
  • 흐림대전 8.3℃
  • 구름많음대구 0.4℃
  • 구름조금울산 7.5℃
  • 맑음광주 6.9℃
  • 맑음부산 9.2℃
  • 맑음고창 8.0℃
  • 맑음제주 10.8℃
  • 구름많음강화 5.4℃
  • 흐림보은 7.0℃
  • 흐림금산 8.7℃
  • 맑음강진군 9.4℃
  • 맑음경주시 7.1℃
  • 맑음거제 10.0℃
기상청 제공

[서주원 대하소설 ‘파시’] 적벽강 죽막동 해적 6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며칠 굶은 앙얼은 송편이든 찬밥이든, 흙이 묻었건 말건, 가릴 처지가 못 됐다. 닥치는 대로 찬밥을 입 안에 밀어 넣을 때, 꺼꾸리가 묘지 앞으로 다가왔다.

 

앙얼이 꺼꾸리의 턱밑에 흙 묻은 찬밥 한 덩이를 들이밀었다. 꺼꾸리는 먹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앙얼은 몸집이 큰 만큼 입이 먼저 나간다. 꺼꾸리는 삐쩍 말라 한 끼로도 오래 버틴다. 며칠 곡기를 놓쳐도 배고픔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깊은 산에서는 열매와 약초를 주워 먹고, 주인 없는 논밭에서는 농작물을 훔치듯 꺾어 넣는다. 갯가로 내려가면 해산물을 주워 삼킨다. 해삼과 전복만큼은 꺼꾸리가 눈을 못 떼는 바닷가 간식거리다.

 

꺼꾸리는 들쥐나 뱀을 자주 잡아먹는다. 불을 피울 수 없는 날이면 꿈틀거리는 날것을 그대로 씹어 삼킨다. 탈은 한 번도 나지 않는다.

 

앙얼은 꺼꾸리의 먹성을 잘 안다. 꺼꾸리는 대충 넘겨도 사는 놈, 굶어도 투정하지 않는 놈이다.

 

먹을 것이 앞에 놓이면 앙얼은 꺼꾸리보다 먼저 손과 젓가락을 내민다. 마주 앉은 밥상에서 꺼꾸리가 “입맛이 없다”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놓아도, 앙얼은 걱정하지 않는다.

 

앙얼이 삼대 주린 걸신처럼 개미가 달라붙은 찬밥 덩어리를 게걸스럽게 욱여넣는 사이, 꺼꾸리는 묘지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다. 찬밥 몇 덩이를 게 눈 감추듯 먹고 나서 앙얼이 그 뒤를 따랐다.

 

계곡에 발이 닿자마자 앙얼은 바위틈 물을 두 손에 모아 연거푸 들이켰다. 목이 탔다.

 

타들어 가던 목을 적시려 계곡물을 들이켠 앙얼은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너른 바위 위로 벌러덩 몸을 눕혔다. 뱃속에 차오른 냉기가 식곤증을 불러왔는지, 돌베개가 머리에 닿자마자 그는 곧장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졌다.

 

잠시 뒤엔 꺼꾸리도 돌베개에 머리 대고 잠들어 버렸다. 두 사람이 눈을 뜬 건 몇 식경 뒤였다. 해 질 무렵쯤, 둘은 걸음을 떼어 죽막동 뒷산에 올랐다.

 

두 사람이 수리봉 중턱서 죽막동 뒷산으로 숨어든 데는 꿍꿍이속이 있었다. 갯가에 묶여 있는 고깃배를 훔쳐 타고 고군산 비안도로 건너갈 작정이었다. 비안도 인적 드문 갯가에는 해적 부두목 짜구가 숨어 있다.

 

죽막동 갯가엔 고깃배 몇 척이 정박해 있었다. 달 뜨는 오늘 밤, 야심한 때에 그중 한 척을 훔쳐 타고 출항할 작정이었다. 해서 앙얼과 꺼꾸리는 수성당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실은 어젯밤 출항하려고 했었다. 마을 앞 포구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아 밤이 깊어 인적이 뜸해지자 배에 올랐지만 이미 썰물이 빠져나가 배 밑바닥이 갯벌에 쩍 하고 달라붙은 뒤였다.

 

날이 샐 무렵, 두 사람은 죽막동 뒷산에 올라 계곡에 몸을 숨긴 채 잠들었다. 점심나절까지 낮잠을 잔 두 사람은 다시 갯가로 나왔다. 일단은 수성당에 숨어들어 먹을거리를 뒤져 보고, 몸을 숨기고 있다가 죽막동 갯가의 배를 훔칠 작정이었다.

 

꺼꾸리는 수성당 좁은 앞뜰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긴다. 시누대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드리운 앞뜰은 낯선 터가 아니다. 눈을 감고도 앞뜰 가로질러 당집 안으로 들어갈 만큼 꺼꾸리는 수성당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떠돌이 해적은 풍찬노숙을 면하기 어렵다.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을 자야 하는 꺼꾸리와 앙얼은 외딴 당집에 들어가 잠들기도 하고, 농가의 외양간에 숨어 집짐승과 잠자리를 다투기도 했다.

 

수성당 아래 여울굴은 주뱅과 앙얼이 일 년에 예닐곱 차례 숨어드는 단골 은신처다. 죽막동 사람들은 물론 격포진 관원들조차 성지인 수성당 주변 출입을 꺼린다. 해서 여울굴은 칠산바다 몇몇 해적들에겐 은신처로 애용된다.

 

꺼꾸리와 앙얼이 여울굴을 이용하는 횟수가 다른 해적들보다 몇 배나 많은 데에는 이유가 남다르다.

 

앙얼은 변산반도의 서쪽 끝, 격포진과 마주한 섬 위도가 고향이다. 위도와 거리로 가장 가까운 뭍이 이곳이다. 낯선 타관살이에 삶이 찌들고, 단 하루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앙얼에겐 여울굴이 어머니 품 같은 영혼의 안식처다.

 

비안도 출신인 꺼꾸리도 여울굴에 몸을 뉘면 금세 코를 곤다. 여울굴에 숨어 지친 몸을 감추면 두 사람의 마음은 이내 가라앉는다.

 

봄이든 가을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앙얼은 여울굴에서 위도의 노을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래고 객사의 공포도 지운다.

 

오늘처럼 달이 뜬 밤, 아련하게 건너다보이는 위도의 야경은 일찍 저승으로 간 집안 어른들의 얼굴까지 떠오르게 한다. 꼬맹이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 품에 안겨 듣던 자장가를 환청처럼 듣고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사실 그 환청이란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외롭고 배고픈 갈매기 울음, 시누대가 바람에 바스락대며 울어대는 소리일 뿐이지만.

 

앙얼은 소싯적 고향 위도 하왕등도를 떠났다. 칠산바다 해적이 된 지 벌써 십수 년, 그가 여울굴에서 은신한 횟수는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조차 벅찰 정도다. 그는 여울굴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누군가의 기척도 느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