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수성당 처마 밑으로 허연 달빛이 작두날처럼 비껴든다. 앞뜰로 들어서던 꺼꾸리가 발걸음을 딱 멈춰 세운다.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당집 안 인기척을 느낀 그는, 자나깨나 제 목을 노리는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잽싸게 왼편 시누대숲으로 몸을 날려 숨는다.
“으따 씨팔, 사람 미치게 허는고만 잉! 저 안에 든 것이 사람이여, 구신이여?….”
사지가 벌벌 떨린다. 맞부딪치는 이빨이 달달거리고, 비수를 꽉 쥔 오른손조차 사시나무 떨듯 경련한다.
“오메, 어찌야 쓴당가? 구신이 아니고 사람이네 잉!”
흔들리던 촛불이 꺼지고 당집에서 나오는 두 여자를 보자 비로소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다. 제 딴에는 웅얼거리는 혼잣말이지만, 정적을 깨는 긴장감이 비수 끝처럼 서려 있다.
시누대숲에 몸을 바짝 붙인 꺼꾸리는 들숨조차 목구멍 뒤로 삼키며 조심스럽게 들이킨다. 여차하면 칼부림을 해서라도 입을 막아야 할 만큼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처지다. 그는 비수 손잡이를 다시 한번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거머쥔다.
‘대관절 묻 허는 년들여? 꼬랑지 아홉 개 달린 백여시도 아닌디 말여!….’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간다. 갓 솟은 달빛이 어스름을 헤치지만, 먼발치라 두 여자의 낯바닥 굴곡은 분간하기 어렵다. 큼직한 보따리를 들고 앞장서는 여자는 쉰 고개를 넘긴 듯 보이고, 뒤따라 나오는 여자는 몸태가 예사롭지 않다. 해산일이 코앞인지 배가 남산만 하게 솟아 있고, 거칠게 어깨를 들먹이며 짐승 같은 숨을 몰아쉰다.
“소아야! 고집 피우덜 말고 내 말 좀 들으란 말이다.”
보따리를 든 나이 든 여자는 송 씨다. 그녀의 귀거친 소리가 밤의 명치를 뚫고 나온다. 젊은 여자의 이름은 강소아다.
“이모, 그 말은 인자 고만허소. 나도 그러고 싶네만, 개양할매가 그러라는디 어쩌긋능가.”
어깨를 늘어뜨린 소아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소아의 목소리엔 인당수 깊은 뻘바닥에서 길어 올린 숙명 같은 한숨이 배어 있다.
“여울이 날 때도 그릿다 허든만, 개양할맨지 개똥할맨지 참말로 맹랑헌 할매고만. 아그는 집에서 나야지, 무신 심보로 아그들을 날 때마다 타관 객지 굴속서 나라고 헌디야?”
“개양할매가 당신 생각혀서 그러것능가. 이 손지딸 잘 되고, 내 뱃속에 든 아그들 잘 되라고 그러는 거제.”
대숲에 숨어 대화를 엿듣는 꺼꾸리의 머릿속이 뒤엉킨다. 살려면 두 여자의 등에 비수를 꽂아 피칠갑을 해야 할 판국이 아닌가.
“아니 근디 이모, 잘 나오도 안 함서 어쩌 똥 오짐만 이렇기 마랍당가?”
“아그가 나올 때 되믄 다 그러는 것여!”
“이모, 쩔로 다시 가봐야 쓰것네!”
소아가 무거운 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다. 하필 소아의 미투리가 향하는 곳은 꺼꾸리가 숨어 있는 시누대 대숲 쪽이다. 꺼꾸리는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잔뜩 움츠린다. 머리를 처박듯 헝클어진 머리채를 대숲 밑바닥 시커먼 흙에 문대며 애꾸눈을 부릅뜬다.
바로 예닐곱 발 앞에서 소아가 급히 치마를 올리고 엉덩이를 까더니 쪼그려 앉는다. 서른 고개를 넘긴 뒤로, 젊은 여인네의 살결 구경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달빛을 머금은 소아의 엉덩이가 초가지붕 위 박 두 덩이처럼 실룩거리며 밤의 정적을 희롱한다. 하늘의 북두칠성은 산모의 산고를 지켜봐야 하고, 바다의 도적 꺼꾸리는 생존을 위해 살인이라도 저질러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비수 끝은 차가운 이슬을 머금고, 산모의 가쁜 숨은 대숲의 어둠을 찢어발긴다.
“아직도 멀었냐?”
“여울이 날 땐 안 그러더만 어쩌 이런당가? 똥도 마랍고 오짐도 마란디, 어쩌 똥도 안 나오고 오짐도 안 나온당가?”
“아그가 나올 때 되믄 그럴 수 있당께!”
대숲에 숨은 꺼꾸리는 기가 막힌다. 핏빛 출산을 앞둔 산모의 신음과 살의를 품은 도적의 숨소리가 시누대 잎사귀마다 서늘하게 맺힌다. 그는 땅에 바짝 붙인 봉두난발을 왼손으로 쥐어뜯으며 기회를 노린다. 개양할미의 눈길이 닿지 않는 대숲 그늘 아래서, 죽음의 비수는 소리도 없이 제 칼날을 벼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