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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 대하소설 ‘파시’] 적벽강 죽막동 해적 8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달빛이 수성당 앞마당을 허연 뼈다귀마냥 훑는다. 시누대숲 댓잎들은 저희끼리 몸을 비벼대며 서슬 퍼런 칼 가는 소리를 토해낸다. 대숲이 지르는 비명은 적벽강 파도 소리에 갯벌 숨구멍이 막히듯 짓눌려, 예리한 칼날처럼 허공을 긋는다.

 

소아와 송 씨가 달빛 드리운 가뭇길로 자취를 감춘 뒤, 한참 동안 댓바람 소리에 숨을 죽이던 꺼꾸리가 마른 뼈마디를 뒤틀며 몸을 일으킨다.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관절마다 스민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한 가지만 맴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거칠세 뒤집힌 앙얼의 마른 시울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인자 당집은 텅 비었으까?’

 

확신 알 수 없다. 꺼꾸리의 입안에 잔뜩 고인 시큼한 마른침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귀를 세우고 눈을 부릅뜬 채 당집 안팎의 흔들리는 그림자를 살핀다.

 

“후유!~”

 

분명 인기척은 없다. 꺼꾸리는 비수를 움켜쥐고 대숲을 빠져나와 수성당 마당으로 기어든다. 살금살금 발을 딛는 꼴이 딱 물 빠진 뻘바닥을 기는 도둑게다. 가사리 돌부리 하나조차 자갈비명을 지를까 봐 발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은다. 흙을 달래고 바람을 재우며 걷는다.

 

달빛을 조금 머금은 수성당 처마 밑 어둠은 소금에 오래 삭힌 멸치등짝 마냥 포릿하다. 너덜대는 문풍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향불 냄새는 꺼꾸리의 코끝을 무딘 낚싯바늘처럼 꿰어 낚아챈다.

 

“씨발!”

 

창호지 색은 누렇게 바래고, 이곳저곳 구멍 난 방문에서 풍겨 나오는 희미한 밥 냄새, 국 냄새, 반찬 냄새가 꺼꾸리의 빈속을 뒤집어 놓는다.

 

“하아!”

 

꺼꾸리는 숨을 낮게 뱉으며 문틈으로 방문 안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없다. 탱화 아래 좌우로 세워진 두 개의 촛대 위에서 촛불이 흔들리고, 제상 아래 향로에 모둠으로 꽂아 놓은 여러 개의 향에서 연기가 피워오른다.

 

“삐이이걱!”

 

짚신을 벗지도 않고 꺼꾸리가 살짝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든다. 문턱을 넘자 초 냄새와 향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향 연기와 초 그을음을 머금은 공기에 그의 혀끝이 시큰하고 입안은 텁텁하다.

 

방 천장은 낮다. 시커먼 서까래를 고스란히 들씌운 채 어깨 위로 내려앉아 사람을 억누른다.

 

정면 벽에 걸린 여러 점의 탱화가 꺼꾸리를 내려다본다.

 

한가운데 좌정한 개양할미, 그 아래 반원형으로 모여든 여덟 딸. 근엄한 여러 얼굴에 박힌 눈매가 작살 끝처럼 날카롭다.

 

그 우측에 걸린 탱화엔 백발에 흰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앉아 있다. 산신령인지 바다의 용왕인지, 꺼꾸리는 분별할 수 없다.

 

“씨부랄!”

 

꺼꾸리는 숨이 턱턱 막힌다. 탱화의 여러 신들은 웃지도 않고, 노려보지도 않건만, 그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흰색, 분홍색, 녹색, 여러 색이 뒤섞인 신들의 옷자락은 부드럽게 흘러내리나, 그 등 뒤로는 이승과 저승의 질서가 홍어 삭는 냄새처럼 지독하게 꼬여있다. 이 방안에서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의 살피가 그 눈빛 속에서 서슬 퍼렇다.

 

“젠장!”

 

꺼꾸리는 그 서슬을 피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다. 그래도 신들의 눈이 뒤통수를 따라온다. 결코 깜박거리지도 않는 신들의 서늘한 시선에 뒷덜미가 오그라들자 그는 비수 손잡이를 더 깊게 틀어쥔다.

 

탱화 아래 제상엔 제기들이 줄을 지어 놓였다. 첫 줄의 고봉으로 담은 쌀밥 위엔 숟갈이 꽂혀 있고, 국그릇엔 허연 비계가 섞인 돼지고기가 몇 점 떠 있다. 둘째 줄에 놓인 찐 굴비는 우악스럽게 등을 굽었다. 죽어서도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웅변하는 성싶다.

 

푸짐하고 풍성하게 차려진 제상을 훑어보는 꺼꾸리의 시선이 짚신 아래 돗자리로 향한다. 발치에 징이 죽은 조개마냥 숨을 죽인 채 누워 있다. 그 옆엔 여러 무구와 화려한 무복이 깔려 있다.

 

‘대관절 이 년들이 으떤 년들이간디, 여그서 지셀 지내고, 굿도 허고, 아새끼까지 날라고 헌 것여?’

 

꺼꾸리는 예사롭지 않은 젯상 차림과 예전엔 단 한 번도 이 방안에서 구경하지 못했던 당골의 소품들을 살피면서 속으로 이렇게 헤아린다.

 

‘어찟거나 저찟거나 할매, 용서허시오. 나도 시방 배창시가 꼬여서 창자가 서로 맞붙게 생겼소만, 내 친구 앙얼이 새끼 멕여 살릴라믄 나도 어쩔 수 없소. 이 젯상의 밥도 좀 싸가고, 괴기허고 과실도 좀 챙길턴게 할매, 지발 족족 굽어살펴 주시오.’

 

꺼꾸리는 향로에 향을 한 대 꽂은 뒤, 두 손을 모으고 개양할미 전에 비나리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