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9단은 다음달 9~15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의 5번기를 벌인다.
이번 대국은 컴퓨터를 상대로 벌이는 인간의 자존심 싸움이다. 무려 100만 달러(약 12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그간 컴퓨터는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사람의 능력을 앞질렀다. 1997년 수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고 2011년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은 미국 텔레비전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퀴즈왕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바둑은 컴퓨터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꼽혔다. 체스와 달리 돌마다 특정한 경로가 정해져 있지 않고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싸움을 걸어온 구글 측은 자신만만하다.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와 이 9단의 승률을 5대 5로 예상했다.
알파고는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도입해 사람이면 1000년 걸리는 100만 번의 대국을 4주 만에 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둑계 입장은 다르다. 이 9단은 “알파고의 기보를 살펴보고 있는데 아마추어 최강자 수준의 바둑 실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정도면 내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약점에 대해서는 “직접 바둑을 둬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대국마다 실력에 편차가 있다”며 “아직 충분하게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알파고가 잘 두는 대국 스타일을 찾아 이에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기사들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명훈 9단은 “이 9단이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 않는 한 5대 0으로 승부가 끝날 것 같다”며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은 한국 프로기사와 실력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이 대국으로 인공지능이 프로기사를 꺾을 수준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박승철 8단 역시 “이 9단이 5대 0으로 이길 것 같다”면서도 “알파고가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에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9단이 한 판이라도 졌을 경우다. 인공지능 바둑이 세계 최강의 프로기사를 꺾은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이번 대국은 종합 전적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사람의 가능성과 한계를 검증하는 역사적인 싸움”이라며 “만약 이 9단이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앞으로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길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사람은 언제까지 바둑에서 컴퓨터를 압도할 수 있을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인공지능 바둑은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고’ 데이터와 실전 경험을 무한히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대로라면 인공지능 바둑은 ‘신의 경지’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
국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 누리그림 대표는 “이미 인공지능 바둑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빠르게는 1년, 늦어도 10년 안에는 컴퓨터가 사람을 이길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 9단 역시 “현재 인공지능 수준으로 볼 때 2년 후에는 사람을 능가할 것 같다”며 “이번에 내가 이긴다고 가정해도 2년 정도 지나 구글이 또다시 도전장을 내민다면 누가 대결하든 쉽게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