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담은 손으로 수놓는 혼자수' 이용주 작가가 원작과 같은 사이즈로 작업한 세계명화들의 작품 이야기를 전한다.
WRITER 이용주 작가
한스 홀바인은 누구인가
한스 홀바인은 독일의 화가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1497년 출생, 런던에서 1543년 사망했다.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영국 헨리 8세의 궁정화가이기도 했으며, 인물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정확한 사실주의적 묘사에 힘입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엄중한 임무를 띤 두 젊은이
한스 홀바인이 이 〈대사들〉이라는 작품을 그릴 당시의 유럽은 가톨릭이 신교에 도전을 받을 때였다. 영국에 간 프랑스 대사들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천문학과 항해술이 발달했던 시기다.
이 작품은 작품 속 왼편의 ‘장 드 댕트빌’의 주문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29세의 나이로 프랑스의 왕인 프랑수아 1세의 “로마교회와 영국의 갈등을 해소하라”는 명을 받고 영국에 파견된 외교 사신이다.
당시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 왕비와 헤어지기 위해 교황에게 결혼 무효소송을 냈으나, 소송은 기각됐다. 그러나 헨리 8세는 1533년 평소 마음에 두던 앤 블린과 결혼했고, 1536년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하였기에 이 문제 해소를 위해 파견된 것이다.
작품 속 댕트빌의 모습은 굉장히 화려하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당당한 자태부터가 그렇고, 장식이 달린 모피 외투와 베레모, 목에 건 ‘생 미셸’이라는 최고의 훈장과 손에 든 단검은 댕트빌의 지위와 명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른편의 인물은 댕트빌의 친구이자 프랑스 라보르의 주교로 당시 나이는 25세다. 그는 훗날 프랑스 대사가 되어 스페인이 지배하던 베네치아에 파견되는 성직자로 종교개혁의 원인이 가톨릭 내부에 있음을 지적했던 가톨릭 개혁주의자이기도 했다.
오브제에 숨겨진 의미들
실물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커튼을 배경으로 두 남자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보통 초상화에서는 인물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탁자를 화면 중심에 배치, 다른 작품들과 차별을 두었다.
2단 탁자 위에는 인간의 지식과 쾌락에 연관된 물건들이 널려있다. 위에는 천문학과 항해 등 과학과 관련된 천구의, 휴대용 해시계, 망원경 이전의 천체관측기구인 사분의, 헨리 8세가 이혼장에 서명한 시각인 4월 11일 10시 30분을 가리키는 다면해시계가 놓여있다. 해와 별 등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토르카툼’은 시간과 날짜를 알 수 있는데, 그 날짜가 영국과 로마가 결별한 1533년 4월 11일로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2단 탁자의 아래에는 지식과 관련된 물건들이 있다.
지구의와 수학책, 삼각자와 컴퍼스, 아름다운 선율과 조화를 생명으로 쾌락을 상징하는 류트와 피리다. 펼쳐진 찬송가의 왼쪽에는 구교를 대표하는 ‘인간이여 행복하길 바란다’는 성가가, 오른쪽 면에는 루터파 합창곡인 ‘성령이여 오소서’라는 성가가 실려있어 두 교파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이 표현되어 있다.
즉, 한스 홀바인이 이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물보다는 탁자에 펼쳐진 사물들의 의미에 더 비중을 두었음을 나타낸다.
죽음 앞에 모든 건 덧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바닥의 모자이크 문양 위로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뒤틀린 해골이다. 통상 해골의 의미는 ‘죽음’, 인간의 원죄와 허영과 사치 등 세속적 욕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한스 홀바인은 주인공들이 딛고 선 바닥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얘기다.
홀바인은 원근법의 극단적인 왜곡으로 형태를 재해석한 ‘왜상기법’을 사용하여 눈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파악하라는 의미로 해골 형상을 그림 속에 숨겨 놓았는데, 드 댕트빌의 베레모에도 은으로 해골을 수놓았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은 덧없는 법’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엄중한 사명감을 지닌 인물들이 죽음을 각오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왼편 맨 꼭대기 녹색 커튼 뒤에 보일 듯 말 듯 한 십자가상에도 젊은 두 대사의 무거운 심경이 투영되어 있고, 하느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마음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