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화륜선이 임수도 앞 인당수 물살을 찢었다. 쇳소리처럼 울부짖는 엔진음이 칠산바다의 가슴팍을 뒤흔들었다. 숨구멍 같은 연통이 토해낸 시커먼 연기는 갯바람에 휘감겨 하늘로 솟구쳤다. 불구름 아래서 연기는 찢기듯 흩어졌다.
화륜선 뱃전 양쪽의 거대한 두 바퀴가 인당수의 물길을 뒤집기 시작할 무렵, 불구름 아래 길게 늘어졌던 석양이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았다.
칠산바다 어부들이 숨을 죽였다. 화륜선이 법성포 앞바다를 지날 때도 그랬지만 형제섬 앞에서 인당수 쪽으로 뱃길을 틀 때도 고깃배들이 조업을 멈추고 허둥지둥 달아났다. 인당수의 치마폭에 올라탄 화륜선이 임수도의 물길을 제멋대로 헤집자 위도와 고군산 어부들의 눈빛에 모가 섰다.
위도의 부속 섬 식도에서 인당수로 조업을 나온 전마선 한 척. 갑판 위에선 예순을 넘긴 아버지와 스물을 갓 지난 아들이 하루의 마지막 그물을 끌어 올린다.
“아부지, 저 화륜선이 말요, 성지섬서 임수도쪽으로 오고 있는디, 벨 일은 없것지라우?”
“그러것제. 저 놈들도 군함을 몰든 상선을 몰든 뱃놈은 뱃놈인디, 왜국으 뱃놈이든, 청국으 뱃놈이든, 뱃놈으 도릴 안 지키믄 용왕님한티 천벌을 받고 뒈진다는 걸 잘 알고 있것제. 저 화륜선 선장놈이 지대로 눈깔이 박혔으믄 쩔로 비켜 갈턴게 걱정 붙들어 매고 어여 물이나 보자.”
“내 생각은 쪼까 틀린디요, 저 화륜선이 저 저 안마도 쪽서 올라와가꼬 법성포 앞바다를 지나 여그 인당수로 들올 때까지 유심히 지켜봤는디라우, 저 배가 나타낭께 법성포 배, 구시포 배, 위도 대리 배 석금 배들도 죄다 도망치던디 아부지, 우덜도 언능 내뺍시다!”
아들은 떠지껄대지만 아버지는 대꾸 없이 뱃머리에 단단히 묶인 부표 밧줄을 살핀 뒤, 곰방대 입을 문다. 아들은 곰방대를 곰비임비 쪽쪽 빨아대는 아버지의 홀쭉한 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늙은 어부가 온몸으로 느끼는 불길함이 살점도 없는 구릿빛 볼에 진하게 배어 있다.
“탕 탁!…타앙 타악!…”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와 부자의 거친 숨소리가 맞선다. 전마선은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인당수 위에서 몸을 뒤틀었다. 화륜선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잔물결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풀어헤친 파도의 갈기 위로 포말이 흩날렸다. 단단히 성이 난 것일까.
드디어 인당수에 본모습을 드러낸 화륜선. 검은 금속으로 덮인 거대한 몸체에 노을이 스쳤다. 양쪽 뱃전에 달린 물레 모양의 바퀴가 대찬 물자세질로 핏대가 오른 인당수를 갈랐다. 엔진 소리는 하늘과 바다의 고막을 찢고도 남을 기세다.
인당수도 혼이 나가고 넋이 빠진 것일까. 전마선이 돛대를 미친 듯 흔든다. 아마도 홀린 모양이다.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돛대 두 개를 세운 화륜선. 배꼽 근처에 우뚝 솟은 연통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바람에 흩어져 전마선 갑판 위로 내려앉는다.
임수도보다 훨씬 몸집이 커 보이는 괴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아버지는 몸을 움츠렸다. 수십 년 파도를 헤쳐온 그였지만 눈앞의 괴물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아들은 몸서리를 치며 부들부들 떤다. 살아 움직이는 괴물의 앞발이 전마선 가까이 다가왔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루 조업의 마무리를 재촉했다.
“거업 겁낼 것 읎다. 그으 그물을 거진 다 거어 걷었응게, 어 언능 끝내고 서둘러 식도로 들어가자!”
아버지는 거친 손아귀로 땀과 바닷물이 밴 밧줄을 꽉 쥐었다. 정신없이 전마선 갑판 위로 밧줄과 그물을 걷어 올리면서도, 그의 시선은 화륜선 뱃머리 정수리에 꽂혀 있었다. 칠성판을 지고 다가오는 물귀신이 뱃머리 위에 앉아 있는 듯했다. 콧구멍으로 스며드는 화륜선 연통의 매연이 죽음의 피비린내처럼 느껴졌다.
“우르릉 쿵!…우르릉 쿵!…”
화륜선 엔진 소리가 입을 쫙 벌리고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호랑이의 포효처럼 느껴지자, 아들은 공포에 질려 고물 쪽에 쌓아 둔 그물을 바다에 던지려 했다. 그러나 그물이 선체에 걸리고 말았다.
“아부지, 이 일을 어쩌믄 좋다요? 그물이 놋좆에 걸려가꼬 빠지들 않는디 이러다 저 배 코빼기가 여그 중동을 박으믄 우리 뗀맨 반토막 나는 것 아닐꺼라우?”
아들의 비명이 터지자 아버지는 식칼을 들고 이물과 고물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가며, 뱃머리에 묶인 부표 밧줄을 끊고 놋좆에 걸린 그물을 풀었다. 그러나 그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화륜선이 거대한 산처럼 밀려온다. 바다도 숨을 몰아쉰다. 아버지의 눈에 화륜선의 높고 뾰족한 뱃머리는 전마선을 내리찍을 도끼 같다. 천둥소리 못지않을 엔진 소리는 지옥문이 열리는 굉음으로 들린다. 연통에서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는 흡사 풀어헤친 저승 망나니의 더벅머리다.
식칼을 움켜쥔 채 고물에 앉아 놋좆에 감긴 그물을 끊으려는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아이쿠, 으으윽!…”
식칼에 아버지 왼손 손등이 찔렸다. 붉은 피가 그물에 튀고 갑판 위로 흘러 바닷물과 뒤섞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