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간절함으로 이룬 우승
이정은5(27·교촌F&B)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5억원) 정상에 올랐다. 통산 5승째를 거뒀다. 이정은은 9일 제주 오라컨트리클럽(파72·6519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2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6언더파 210타로 박소연(23)과 동타를 이룬 뒤 18번홀 연장전에서 1.5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정상에 올랐다. 이날 우승으로 이정은5은 2011년 8월 넵스 마스터피스 이후 4년 만에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됐다. 지난 2009년 김영주골프 여자오픈에서 첫 승을 거둔 이후 통산 5번째 우승이다. 반면 박소연은 아쉽게 데뷔 첫 승에 실패했다.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박인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 4개를 석권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아쉽게 공동 8위에 머물렀다. 박인비는 3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3개로 타수를 줄이지 못한 채 최종합계 2언더파 214타로 대회를 마감했다. 1라운드에서 버디만 5개를 잡으며 대회 공동 선두로 출발했던 박인비는 6번홀(파5)에서 트리플보기를 치는 등 주춤했던 2라운드 성적을 결국 만회하지 못했다. 박인비는 14번째 도전이었던 KLPGA 우승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화려함에서 꾸준함으로,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한 이정은
2007년부터 KLPGA 정규투어에 나선 이정은 선수, 그녀가 겪어 온 지난 9년을 되돌아보면 ‘화려함’이 ‘꾸준함’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데뷔 초반 파워 넘치는 대형 신인의 등장에 관심이 쏠렸고, 2009년 아시아투데이 김영주골프 여자오픈과 메이저대회인 KLPGA 선수권대회 우승까지 거머쥐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2010년과 2011년에도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과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각각 우승하며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러나 이후 투어에 꾸준히 참여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정은은 묵묵히 훈련하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노력은 결국 그녀를 지켜냈다. 그녀는 이제 투어에서 고참이 됐다. 이런 점에 대해 이정은은 “처음에 투어를 나설 때만 해도 조심스럽게 치려고 했어요. 실수할까봐 그랬죠. 모든 행동도 조심하려고 했어요. 조심조심하며 지냈죠”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요즘 시작하는 후배들은 신체조건도 좋고, 제 또래가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장비도 많이 좋아졌어요. 레슨 받는 환경도 달라져서 골프 자체가 업그레이드 된 느낌입니다. 선수들이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게 되니 좀더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죠.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덧붙였다. 파워 측면에서도 변화는 확실했다. 이정은은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는 저를 포함해 극소수였어요. 그리고 대회 기간에는 절대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았죠. 당시에는 그렇게 하면 대회에 지장이 있는 것으로 인식했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누구를 막론하고, 체력이 우선이라 생각하기에 웨이트 트레이닝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죠”라고 말했다. 이정은을 다시 우승으로 이끈 힘도 여기에 있다. 그는 투어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대회 기간에도 거르지 않았다. 규모가 크거나 중요한 대회 때는 아주대학교 스포츠센터 최윤혁 팀장이 함께한다. 이정은은 “저는 체력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실제로 골프 연습시간은 짧게 해요. 대신 클럽을 손에 쥐었을 때는 최대한 집중하면서 고치려는 부분을 파고들죠. 시즌 때는 컨디션만 잘 유지하려고 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체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무관으로 보낸 기간 동안에도 몸에 투자하며 꾸준히 체력을 키운 건 어렸을 때 당한 부상이 계기가 됐다. 이정은은 “고등학교 때 왼쪽 손목 부상 때문에 수술을 했었어요. 아팠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죠. 선수는 일단 아프지 않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에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이 체력과 부상방지예요.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월요일마다 꼭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우승 후에도 예외는 없었다. 경기를 하면서 근육이 뭉치게 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근육을 풀어주면서 고르게 강화시키고 있다. 젊은 후배들과 부딪히고 있지만 ‘체력에 대해선 자신있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당연하죠”라는 강한 어조의 답변이 되돌아왔다. 이정은은 “제가 체력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제 시작’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말을 할 때도 에너지가 넘쳐났다. 실제로 이번 시즌을 앞두고 동계훈련을 떠날 때부터 그녀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신인처럼 더 열심히 하려 했고, 오래된 습관들을 고치려 했다. “저 역시 다른 선수 못지않게 공격적으로 쳤어요. 무서울 것 없이 쳤죠. 그런데 프로무대에서 계속 뛰다 보니 계속 이래선 안될 것 같더라고요. 공격적으로 하는 건 단기적으로 스코어를 줄일 순 있겠지만 오히려 기복이 심해지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를 주면서 더 발전하려고 했어요. 지금도 그런 과정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정은의 말 속에 울림이 있었다. “체력을 잘 유지하면서 미세하게 골프를 다듬어간다면 오랜 기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간절함으로 이룬 4년만의 우승
이정은은 18(파5)번홀에서 약 5m 거리의 버디퍼트를 남겨 놨다. 넣으면 우승이었으나 공은 홀컵에서 손톱 하나 길이로 벗어나며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같은 18번 홀에서 펼쳐진 연장전에서 이정은은 과감한 아이언 샷으로 다시 한번 핀을 직접 공략했다. 그리고 이번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4년 만의 우승이자 통산 5번째 우승 트로피였다. 경기 후 이정은은 "솔직히 끝날 때 조금 떨렸다. 오랜만에 느낀 감정이라 그랬다. 그래서 (연장 바로 전 18번 홀에서) 더 빨리 치려고 했는데 안 들어갔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장 홀에선 천천히 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평소 운동을 많이 한다. 그래서 더웠지만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수분도 충분히 보충했고, 이번 대회는 컨디션 등 모든 면에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2007시즌 데뷔 후 꾸준히 우승컵을 쌓아온 그는 2009년 아시아투데이 김영주골프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같은 해 KLPGA 선수권대회(現 이수그룹 KLPGA 챔피언십)서 첫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수집했다. 이듬해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과 2011년 넵스 마스터피스까지 제패하며 투어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 하는 듯했다. 이후 우승 소식이 끊겼다. 딱히 모자란 것도 없었기에 이상했다. 오히려 총상금은 2승을 기록하며 약 2억 4100만원을 모았던 2009시즌 보다 우승이 없던 2013시즌 2억 8000만원을 기록하며 더 벌어들였다. 풀리지 않자 오히려 미국 무대로 눈을 돌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LPGA Q스쿨(시드 결정전)을 통해 세계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얻은 '대기 시드'.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제한적이다. 이정은은 "지금 현재 대기 시드다. 그래서 골프가 더 간절하다. 다음 시즌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MBN 대회는 참가하고 하이원리조트 대회 때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LPGA 요코하마타이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시드권을 유지하려고 한다"며 "만약 시드권 유지를 못한다고 해도 다시 Q스쿨을 봐 도전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번 우승으로 4년간의 무승 징크스를 극복한 이정은의 도전은 향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이번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대회
박인비의 국내 첫 우승 도전으로 화제를 모았던 골프 퀸들의 경쟁이 201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고 시청률 기록을 다시 썼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에 따르면 SBS골프가 지난 8월 7일부터 9일까지 생중계 한 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5억원) 대회 3라운드 평균 시청률이 0.781%(이하 수도권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열린 KLPGA 대회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이며, SBS골프가 KLPGA를 단독으로 중계한 2014년과 2015년을 통틀어 역대 최고 시청률이다. 지난 8월 9일 중계된 파이널 라운드는 1.011% 시청률을 기록, 주말 여왕들의 우승 경쟁에 쏠린 골프 팬들의 관심을 반증했다. 이정은(27 교촌F&G)과 박소연이 연장 접전을 벌이던 라운드 막판에는 순간시청률 2%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가 이처럼 높은 시청률을 보인 데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박인비에게 집중된 관심은 물론, 이정은이 생애 첫 우승에 도전한 박소연과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를 기록한 덕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