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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신약 도입, 한국만 ‘23개월 대기’?…美 압박 명분 자초하는 보험 심사

경제성 평가 면제, 상반기 단 1건…제도는 있는데 작동 안 해
희귀질환·항암제도 ‘가격장벽’…환자에겐 ‘그림의 떡’
글로벌 기업 “한국 시장 후순위”…美 무역보복 빌미 우려
업계 “실행력 부족이 문제…절차·속도 전면 개선 시급”

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한국의 신약 보험 적용 절차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지적이 제약업계와 환자단체를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신속 등재를 위해 마련된 제도들도 대부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어, 환자들의 치료 접근권은 물론 글로벌 신약 도입 속도도 떨어지고 있다. 미국 측은 이런 ‘더딘 접근성’을 무역장벽으로 간주, 통상 압박의 빌미로 삼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 건강보험 등재 시 경제성 평가를 면제받은 신약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2년 전 승인받은 담관암 치료제 ‘페마자이레’가 유일하다. 이 제도는 2015년, 생명을 위협하는 희귀·중증질환에 신속히 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제 작동은 미미하다. 2021년부터 매년 3~8개 수준이던 승인 건수는 올해 상반기 기준 1건으로 급감했다.

 

위험분담제, 동반심사제 등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보완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신약 심사를 통과한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의료계와 업계는 “심사 기준이 모호하거나 데이터 요구가 과도해 신속 등재 제도가 오히려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현재 국내 진입을 기다리는 글로벌 혁신 신약은 21개에 달한다.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먼저 환자들에게 쓰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험 등재가 지연되거나 고가 탓에 사실상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항암제 ‘타브렉타’, ‘컬럼비’, 희귀질환 치료제 ‘가텍스’, ‘탁자이로’ 등은 대체제가 없음에도 수년째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지체는 통상마찰로도 번질 조짐이다. 미국제약협회는 최근 “한국의 보험 접근까지 평균 23개월이 걸려 기업에 부담”이라는 의견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전달했다. USTR 역시 한국의 신약 보험 정책을 ‘불투명한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 문제를 이유로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자단체와 학계는 정부가 신약 접근성 문제를 행정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재정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제도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며 “속도와 기준, 절차 전반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교수는 “보험 재정과 함께 균형 있는 논의가 필요하며, 명확한 로드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