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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KDB생명, 무너진 건 자본인가 신뢰인가

1조원 넘던 자본이 마이너스로 전환된 KDB생명
IFRS17과 금리 하락, 구조적 영업 붕괴가 원인
설계사 이탈과 수익성 악화, 시장 신뢰도 추락
회계 대응만으로는 위기 돌파 어려워…신뢰 회복이 관건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불과 4년 전만 해도 1조원이 넘던 KDB생명의 자기자본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자본총계 –1,348억 원. 완전한 자본잠식이다. 그러나 진짜 무너진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시장과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일지 모른다.

 

 

명색이 국책은행 계열의 생명보험사다. 한때 매각 프리미엄을 논하던 회사가 이제는 생존을 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회계기준 변화와 금리 하락 같은 외부 변수만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긴 어렵다. 구조적 영업 기반 붕괴, 설계사 이탈, 책임경영의 부재 등 신뢰 시스템의 붕괴가 본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KDB생명의 자본총계는 2020년 1조369억 원에서 지난해 1분기 613억 원으로, 4년 만에 1/17토막 났다. IFRS17 도입은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게 만들었고, 금리 하락은 그 평가액을 더욱 키웠다. 동시에 자산의 공정가치는 하락했다. 그 결과,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전형적인 자본잠식 상태가 나타났다.

 

지급여력비율(K-ICS)은 경과조치 기준으로는 164%지만, 이를 제외하면 40.6%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의 적기시정조치 기준(100%)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결국 지금의 수치는 회계적 유예로 유지되는 것일 뿐, 실질 재무건전성은 이미 경고등을 넘어섰다.

 

더 우려스러운 건 손익 구조다. 1분기 순이익은 27억 원으로, 전년 동기(71억 원) 대비 62% 급감했다. 불과 2년 전(358억 원)과 비교하면 92.5%나 줄어든 수치다. 보험손익은 49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보험수익이 늘었음에도 손실부담계약비용(119억 원), 예실차손실(96억 원)이 실적을 잠식했다.

 

이는 단순 실적 부진이 아니라, 상품 구조와 계리 가정 자체에 내재된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이미 KDB생명이 제공하는 보험계약의 수익성과 위험관리에 대한 신뢰를 회수하고 있는 셈이다.

 

영업 기반도 크게 흔들렸다. 지난해 1분기 기준 KDB생명의 전속 설계사는 724명으로, 전년 대비 160명 감소했고, 2019년 말(1,741명)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신규 설계사 10명 중 2명만 1년 이상 남는 구조다. 이처럼 설계사 조직 내부의 신뢰와 소속감이 붕괴된 상황에서, 영업력 악화는 필연적이다.

 

그 결과, 개인보험 초회보험료는 55억 원으로 전년 대비 56.4% 줄었고, 보장성보험 초회보험료는 122억 원에서 37억 원으로 69.6%나 감소했다. 판매를 일으킬 사람도, 고객이 믿고 가입할 상품도 없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KDB생명은 보험계약마진(CSM) 상각, 장기채권 리밸런싱, 재보험 출재 확대 등을 통해 자본적정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SM은 일정 비율로 상각돼 보험서비스이익으로 인식되고, 이익은 지급여력 비율의 분자인 가용자본에 포함된다. 일종의 회계적 대응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책은 자본 비율의 '수치'를 개선하는 기술적 조치에 불과하다. 이탈한 설계사 조직, 흔들린 수익 구조, 시장의 신뢰 하락은 숫자로만 채울 수 없는 공백이다. 회계와 자산운용 전략만으로 이 위기를 넘기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KDB생명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중소형 보험사들 상당수도 IFRS17과 킥스(K-ICS) 도입 이후 자본확충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고령화, 판매 채널 축소, 고객 이탈 등 보험업 자체가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선 가운데, 금융당국은 계리 가정의 선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보험사들의 회생 열쇠는 자본보다 신뢰에 달려 있다. 고객의 신뢰, 설계사 조직의 신뢰, 시장의 신뢰.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자본잠식은 일시적 회계 숫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KDB생명이 보여주는 자본잠식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무너진 건 자본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신뢰’였는지도 모른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