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한정완 기자 | 하남산단 지하수 오염 사태는 더 이상 ‘행정 착오’나 ‘보고 누락’ 같은 말로 포장될 수 없는 사건이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한 행정의 실패다.
보고서는 2023년 6월에 나왔다. 그 안엔 ‘1급 발암물질’, ‘기준치 수백 배 초과’, ‘생활용수’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담겨 있다. 그것만으로도 비상 대응이 필요한 중대 사안이었다. 그러나 광산구는 이 보고서를 묵살했고, 광주시는 책임을 회피했다. 그 결과, 시민은 2년 동안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그 물을 쓰며 살아왔다.
광산구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광주시는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 행정기관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대응이 반복됐다. 책임을 미루는 데는 빠르면서, 조치는 없었다. 보고서가 ‘위험’을 말할 때, 행정은 ‘절차’를 말했다. 시민의 건강과 생명은 그저 ‘공문 한 장’보다 가벼운 일이 된 셈이다.
지금 시민이 묻고 있다. “나는 안전한가?”, “아이에게 씻긴 물은 괜찮은가?”, “이미 노출됐다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러나 이 절박한 질문에 행정은 서로를 바라보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광산구는 정화 대책과 수질 전수조사, TF 구성을 말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왜 2년 동안 아무 조치도 없었는가. 왜 그 위험을 시민에게 숨겼는가. 왜 누군가는 그 보고서를 읽고도 행동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보고 체계가 미비했다"는 답은 변명일 뿐이다. 실제로 시민이 궁금해하는 건 ‘과오’가 아니라 ‘무책임’이다.
하남산단 지하수 오염은 물리적 오염보다 더 심각한 신뢰의 붕괴를 초래했다. 시민은 지금, 물보다도 행정을 더 불신하고 있다. 오염된 것은 지하수가 아니라, 행정의 우선순위와 시민을 대하는 태도다.
이 사건은 ‘누가 잘못했는가’만 따지고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보여줘야 할 시험대다. ‘늦었지만 대책을 세우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 명확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피해 가능성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다. 그 전에는 어떤 대책도 시민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할 것이다.
보고서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행정은 없었다. 그것이 이 사태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