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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고려아연의 모험, 자원 주권국 도약의 시험대에 오르다

‘탈중국’ 시대 핵심 광물 확보 위한 전략적 행보
자본잠식·국제법 리스크 속에도 미래 가치에 투자
이재명 정부 ‘글로벌 공급망 강화’ 정책과 맞닿아
정부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과 협력 절실한 시점

탈중국 공급망 재편이 전 지구적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고려아연(회장 최윤범)이 심해저 광물 개발업체 더메탈스컴퍼니(TMC)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고위험 논란 속에서도 전략적 의도는 분명하다. 문제는 이 선택이 미래를 여는 열쇠일지, 과거의 실책을 반복하는 열쇠일지에 대한 물음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요동치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와 자원 무기화 국면 속에서, 핵심 광물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었다. 특히 니켈, 코발트, 구리, 망간 등 2차전지 및 첨단산업의 필수 원료는 산업패권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선택한 ‘심해저 채굴’ 투자는 과감하지만 동시에 논쟁적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캐나다의 심해저 광물기업 TMC 보통주를 인수하고 콜옵션까지 포함해 약 1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TMC는 심해저에서 망간단괴를 채굴해 니켈, 코발트, 구리 등을 확보하려는 기업으로, 고려아연은 이를 통해 이차전지 소재 원료를 자회사 제련소로 도입해 공급망 안정을 꾀하겠다는 전략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TMC가 회계상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고 실질적인 매출 실적이 없는 상태라는 점, 국제해저기구(ISA) 인가 없이 미국 법령을 근거로 채굴 허가를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국제법적 논란과 사업성 한계가 동시에 제기된다. 이는 향후 한국, 일본, 캐나다 등 UNCLOS 비준국과의 무역 및 외교적 충돌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고려아연이 과거 원아시아파트너스, 이그니오홀딩스 등 고위험 투자에서 손실을 경험한 바 있어 이번 투자 역시 실사 검증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따른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단순히 수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원 주권’을 위한 선제적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탈중국 공급망 구축은 단기적 이슈가 아닌 국가 전략과 산업안보의 핵심 과제이며, 이재명 정부가 강조해 온 '글로벌 공급망 강화'와 '전략자원 자립화' 정책 기조와도 정확히 맞물린다.

 

정부는 핵심광물 확보전략과 국제공동광물개발 프로젝트 등을 통해 민간의 해외 자원개발을 적극 독려하고 있으며, 이번 고려아연의 행보는 정부 정책을 앞서 반영한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TMC를 통한 심해 광물 확보는 장기적으로 배터리, 방산, 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에 핵심이 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미국 내 정제-판매 체계로의 확장 가능성까지 내다볼 수 있다.

 

문제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다. 국제법 위반 소지, 기술적 검증 미흡, 과거 실패 투자와의 유사성 등은 단기적으로 고려아연에 부정적 이슈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 리스크들을 투명하고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이 투자는 단순한 기업의 수익 모델을 넘어 대한민국이 자원 소비국에서 자원 주권국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시도는 단독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 국제법적 조율, 기술 협력 및 금융 지원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TMC와의 협력이 단순히 고려아연 개인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자원 전략을 견인하는 이정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기술 강국으로 성장해왔지만, 전략자원의 확보에 있어서는 여전히 취약한 위치에 머물러 있다. 니켈, 코발트, 구리, 망간 등 핵심 광물은 대부분 해외 의존도가 높고, 특정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은 국가 경제 안보의 ‘급소’가 되어왔다.

 

이제는 ‘자원 소비국’에서 벗어나 ‘자원 주권국’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고려아연의 TMC 투자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위험 요소가 적지 않지만, 대한민국이 민간기업의 도전을 통해 글로벌 자원 공급망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해저 광물은 인류의 새로운 자원 보고이자,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다. 대한민국이 이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민간의 도전이 실패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단지 ‘제조 강국’이 아니라, 핵심 광물을 스스로 확보하고 통제하는 ‘자원 주권 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과감한 결단과 연대가 필요한 때다. 고려아연의 이번 선택은, 한국이 ‘자원 수입국’에서 ‘공급망 주도국’으로 전환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