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게임업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크래프톤이 인수한 미국 개발사 언노운월즈의 창립 멤버들이 집단 해임된 뒤,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예고한 것이다. 전 CEO 찰리 클리블랜드는 공개적으로 “결정권은 더 이상 우리에게 없다”고 밝혔다. 5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 계약 뒤에, 창립자의 경영권은 사라졌고, 개발 방향 역시 크래프톤의 일방적인 통제 아래 놓였다는 취지다.

크래프톤 측은 “전 경영진이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개발 지연이 심각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순한 계약 분쟁이 아니다. 내부 의사결정의 투명성, 오너 경영의 일방성, 글로벌 자회사의 자율성 침해 등 이 모든 이슈가 ‘지배구조 리스크’라는 키워드로 집약된다.
게임의 흥망은 개발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좌우한다. 그럼에도 크래프톤은 2021년 언노운월즈를 인수한 후 개발 책임자를 해임하고, 프로젝트 방향을 바꾸는 강수를 뒀다. 팬들 사이에서 “크래프톤 보이콧”이라는 반응이 터져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사는 기존 경영진에 지급된 수천억 원대의 성과 보상금을 언급하며 해임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성과 미달’이라는 이유로 창립자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오너의 뜻에 반하는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배제됐다. 이는 크래프톤이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철학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법 개정안은 이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오는 2026년부터 크래프톤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받는다. 장병규 의장과 그 일가는 현재 22.76%의 지분을 보유 중이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엔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반면, 2대주주인 중국 텐센트는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지분 13.86%를 보유하고도 개별 3%룰만 적용받는다.
결과적으로 대주주는 묶이고 2대주주는 묶이지 않는 구조다. 텐센트가 특수관계인을 통해 지분을 나눠 보유하면, 사실상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는 오히려 외국계 자본의 영향력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크래프톤의 소액주주 지분율은 42.46%에 달한다. 창업자의 전횡을 견제하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 이들이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해임 사태처럼 투명한 정보공개 없이 일방적인 결정만 반복된다면, 이들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
지금은 게임 한 편의 출시 연기가 문제가 아니다. ‘오너 리스크’와 ‘외부 자본의 영향력 확대’라는 이중 위협이 동시에 현실화되고 있다. 크래프톤이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글로벌 수준의 지배구조와 투명한 경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내부의 자율성과 외부의 감시가 조화롭게 작동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게임회사’라는 수식어가 설득력을 가진다.
지금 크래프톤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오너 개인의 영향력을 앞세우며 조직과 팬덤의 신뢰를 잃을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책임경영으로 체질을 바꿀 것인가. 언노운월즈의 창립자들이 남긴 말처럼, ‘결정권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이제 그 말은 해임된 창립자만이 아니라, 투자자와 팬, 그리고 소액주주 모두가 할 수 있는 말이 되고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