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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밸류업과 대형화 사이…증권사를 옥죄는 ‘정책의 딜레마’

밸류업은 자본 줄이라 하고, 대형화는 자본 늘리라 한다
ROE 지표에 묶인 증권사, 실적·성장 모두 발목 잡혀
디지털 자산 기반 STO, 수익성과 확장성 동시에 가능
혼란의 종착지는 입법…토큰증권법이 마지막 열쇠다

ROE 높이라면서 자본 늘리라고? 정부가 동시에 추진하는 ‘기업가치 제고’와 ‘초대형 투자은행’ 정책이 국내 증권사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하나는 자기자본을 줄이면서 수익성을 올리라는 메시지고, 다른 하나는 자기자본을 늘려 덩치를 키우라는 주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 정책은 ROE(자기자본이익률) 제고를 주요 지표로 삼는다. 순이익을 늘리거나 자기자본을 줄여 ROE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문제는 증권사의 특성상 수익성을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통해 자본을 줄이고 ROE를 끌어올리도록 유도해왔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수익 확대가 아닌 ‘지표 치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회사는 자본이 곧 영업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의 말처럼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진짜 밸류업”이지, 단순한 자본 축소는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한편, 정부는 2017년부터 초대형 IB 육성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증권사가 발행어음·종합계좌 등 고위험 상품을 운용하려면 최소 4조~8조 원의 자기자본이 필요하다. 미래에셋, 한국투자, NH, KB, 삼성증권이 이미 초대형 IB로 지정돼 있고, 추가 후보도 줄을 서 있다.

 

여기서 문제는, 밸류업 정책이 자기자본을 줄이라고 하고, 대형화 정책은 자본을 늘리라고 한다는 점이다. 증권사 입장에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을 줄이면 초대형 IB 진입이 불가능해지고, 대형화를 위해 자본을 늘리면 ROE가 떨어져 밸류업 평가에서 밀린다. 정작 정부는 두 정책을 ‘동시 병행’하라고 요구한다.

 

지금 증권사들은 ‘자본은 줄이면서 커지라’는 모순된 미션을 수행 중이다.

 

STO,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마지막 해법일까. 이런 상황에서 업계의 관심은 국회에 계류 중인 토큰증권(STO) 관련 법안에 쏠려 있다. STO는 주식·채권·부동산 등 실물 자산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증권화한 것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증권사들은 전통 금융을 넘어 디지털 자산을 기반으로 한 신사업 진출이 가능해진다.

 

토큰증권은 자산 유동화를 통해 자기자본 대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디지털자산 ETF, 스테이블코인과 함께 3대 가상자산 입법안으로 논의 중인 만큼, 국회와 정부의 속도감 있는 처리가 관건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BCG는 한국의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2030년 37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나증권 고연수 연구원도 “증권사의 디지털 플랫폼과 자본력을 활용하면 밸류에이션과 수익 모두에서 구조적 확장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정책이라는 이름의 가위바위보 게임, 끝은 어디인가. 증권사들은 오늘도 양손에 엇갈린 지침서를 들고 눈치만 본다. 왼손엔 ROE를 끌어올리라는 ‘자본 축소’ 전략서, 오른손엔 초대형 IB를 향한 ‘자본 확충’ 명령서. 그리고 정부는 말 없이 신호를 보낸다. “가위와 바위, 동시에 내라.”

 

이 모순을 풀 수 있는 실마리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토큰증권법은 증권사에게 확장의 공간을 제공하고, 수익과 자본 양측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결정’해야 한다. 증권사에게 실적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정책의 좌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