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상징했던 ‘세기의 결혼’이 이제 ‘세기의 이혼’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오는 16일, 대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선고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부부의 결별이 아니다. 재벌 총수의 사적 일탈이 기업과 사회 전체의 신뢰를 어떻게 흔드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재산이 아니라 ‘품격’이다.

2015년, 최 회장은 한 장의 ‘공개 편지’로 혼외 관계를 세상에 고백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편지는 사과가 아닌 선언이었고, 책임이 아닌 변명이었다. 법원이 지적했듯, 이는 관계 회복의 여지를 스스로 닫아버린 일방적 통보였으며, 사적 일탈을 공적 해명으로 포장한 시도였다. 총수의 언어가 자기 정당화의 수단이 되는 순간, 품격은 이미 무너진다.
법원은 최 회장이 혼외 관계를 유지하며 최소 219억 원을 지출한 사실을 적시했다. 이는 단순한 사생활의 흔적이 아니라, 공적 자산을 관리해야 할 경영자의 자기 절제 실패로 읽힌다. 재벌 총수의 삶은 언제나 기업의 윤리와 맞닿아 있다. ‘사생활’이라는 단어로 가릴 수 없는 이유다. 사적 욕망이 기업의 신뢰를 위협하는 순간, 그 대가는 결국 주주와 임직원, 그리고 국민이 치르게 된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SK㈜ 주식이 ‘특유재산’인지, 혼인 중 형성된 ‘공동재산’인지 여부다. 최 회장은 상속받은 재산이라 주장했지만, 법원은 노 관장의 무형적 기여와 정치적 배경에 주목했다.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치러진 결혼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권력과 재계의 결합’이었다. 대통령의 딸이자 예술인인 노 관장은 SK그룹이 사회적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상징적 존재로 기능했다. 법원은 이러한 결합이 그룹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동시에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에게도 20억 원의 공동 위자료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김 이사장의 행위를 “부정행위의 정도가 심각하며, 공개적 관계 유지가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유책 배우자의 제3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 있는 자의 사생활이라도 사회적 책임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품격’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지를 한 재벌 총수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선고 직후 위자료를 송금했지만, 그것은 법적 의무의 이행일 뿐 도덕적 책임의 완결은 아니다. 진정한 품격은 위기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절제하고, 타인에게 어떤 책임으로 남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SK그룹의 불확실성은 최 회장의 도덕성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사생활이 그룹의 지배구조를 흔들고, 시장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현실은 냉정하다. 주가의 일시적 변동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리더의 품격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신뢰의 붕괴’다.
노소영 관장은 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법정에서 기여로, 인내로, 그리고 품위로 평가받았다. 반면 최 회장의 ‘공개 편지’는 한순간의 고백이 아니라 리더의 자기 무능을 드러낸 문서로 남았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단순한 이혼 소송의 결론을 넘어, 재벌 경영의 윤리 기준을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탁월함이 아니라 품격이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절제하고 조직의 명예를 지키는 힘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금 법적 패소보다 더 무거운 도덕적 심판대 위에 서 있다. 사적 욕망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공적 책임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총수의 품격이 증명되는 마지막 자리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