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과정에서도 규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주길 바란다.” 올해 1월 2일, 윤병운 NH투자증권 대표는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규정과 원칙’을 강조하며 “일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10개월 뒤, 그의 회사는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를 받은 임원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시장은 경악했고, 투자자들은 또다시 ‘농협금융의 윤리 리스크’를 떠올렸다.
 
NH투자증권은 사건이 불거지자 즉시 ‘강도 높은 인사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윤병운 사장을 장(長)으로 하는 전담 TFT(태스크포스팀) 를 구성하고, 내부통제 강화와 임직원 계좌 전수조사, 외부 법무법인 자문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새롭지 않다. 지난해에도, 그 전에도 NH투자증권은 문제 발생 때마다 비슷한 ‘대책’을 내놓았다. 그때마다 ‘투명성 강화’, ‘내부통제 고도화’라는 단어가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조직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TFT의 구성 자체도 회의적이다. 준법감시, 감사, 리스크관리 등 내부 임원들이 중심인데, 정작 외부의 독립적 감시 기능은 부재하다. 결국 ‘자기 점검식 조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보고서가 쌓여도 근본적인 윤리 회복은 어렵다.
윤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2025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불확실성이 팽배한 해가 될 것”이라며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주문했다. “리테일 부문은 디지털 부유층을 유입하고, IB 부문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라”, “운용부문은 효율성을 높이고, OCIO는 AUM을 확대하라.” 는 등 경영목표와 성장방향이 빼곡했다.
그러나 그가 덧붙인 마지막 문장 “규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달라”는 10개월 만에 공허한 선언이 되었다. 그 말이 조직 내 윤리 기준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시스템이 아니라 리더십에 있다. 임직원의 일탈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을 ‘말뿐인 가치’로 만든 경영문화의 결과다.
윤 사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보여주기식이 아닌 글로벌 수준의 내부통제 강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고도화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AI 모니터링,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외부 회계감사 등 물리적 장치는 충분하다. 그런데도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원칙보다 실적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윤 사장이 강조한 “사업부문별 핵심 경쟁력 강화”는 결국 실적 중심 사고를 더 공고히 만든다. 그 결과, 윤리적 경계가 무너진다. 실적을 올리기 위한 내부정보 접근, 리스크를 감수한 거래, 통제망을 피해가는 편법은 결국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또다시 “신뢰 회복”을 약속했다. 하지만 금융의 신뢰는 ‘TFT 회의록’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로 증명된다. 윤 사장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조직의 KPI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수익이 아닌 윤리’를 측정하는 지표가 도입되지 않는 한, 내부통제 강화는 말뿐인 구호에 그친다.
“조직 내 화합과 협업이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직결된다.” 윤 사장이 신년사에서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하지만 지금 NH투자증권은 화합이 아니라 불신, 협업이 아니라 변명에 둘러싸여 있다. 윤병운 사장이 진정한 리더라면, 신뢰를 잃은 조직에 필요한 것은 ‘TFT’가 아니라 ‘성찰’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