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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입체낭독극 〈나는 내일 죽겠지〉, “죽음 너머의 대화, 그 안에 살아 있는 숨결”

제14회 아트룸 블루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주목

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2025년 11월 6일 저녁, 을지로의 예술공간 아트룸 블루에 조용한 숨소리와 짧은 침묵이 교차했다. 제14회 아트룸 블루 페스티벌의 개막작 〈나는 내일 죽겠지〉는 거창한 무대 장치도, 현란한 조명도 없이 오직 두 사람의 목소리로 완성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울림은 그 어떤 장식보다 깊고 오래 남았다.

 

 

죽고 싶은 사람과 살고 싶은 사람, 그 사이의 대화

병원 2인실. 자살을 시도했다가 깨어난 ‘미수’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델마’가 한 방을 공유하게 된다. 삶에서 도망치려는 사람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마지막을 살아보려는 사람. 극은 단 한밤의 대화 속에서 삶과 죽음, 실패와 용서가 교차하는 감정의 교두보를 세운다.

 

이 작품은 배우 이도경과 고연주가 함께 쓰고 연출한 창작 입체낭독극이다. 이도경 배우가 2년 전 ‘죽음’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해 기획을 구상했고, 고연주 배우가 그 감정의 결을 언어로 빚어내며 희곡을 완성했다. 둘은 연출자 없이 스스로 해석하며 무대를 쌓았다. 그만큼 작품은 인위적인 연극적 과장 대신, 말의 온기와 눈빛의 여운으로 채워졌다.

 

 

이도경, 델마의 마지막 밤을 살아내다

이도경 배우는 ‘델마’ 역을 맡았다. 그녀는 시한부의 불안보다 밝음과 희망으로 ‘살아내려는 용기’를 보여줬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조용히 객석을 스쳐 지나가며, 관객의 내면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나는 내일 죽겠지〉는 죽음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델마는 내일을 기다리지만, 사실은 오늘을 버티는 사람이죠.”

 

공연 후 이도경 배우가 남긴 이 코멘트처럼, 델마는 삶을 미련 없이 정리하려는 인물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답게 존재하려 애쓰는 인물이었다. 그 연기를 통해 이도경은 단순한 ‘배역’이 아니라, 인간의 깊은 층위를 투명하게 비춰냈다.

 

 

고연주의 ‘미수’, 절망과 감정의 균열을 담아내다

고연주 배우가 연기한 ‘미수’는 다르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격정적이거나 절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 낮은 목소리로 실패를 되뇐다. 델마의 버킷리스트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미수의 감정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그 변화는 관객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순간의 하나였다.

 

무대보다 커진 공감, 낭독극이 가진 치유의 힘

무대는 단출했다. 병상이 연상되는 의자와 도서대, 희미한 조명, 그리고 배우 두 사람. 이 단순한 공간 안에서 관객은 각자의 어두운 기억과 마주했다. 누군가는 ‘미수’의 절망을, 누군가는 ‘델마’의 담담함을 통해 스스로 시간을 떠올렸다.

 

〈나는 내일 죽겠지〉는 관객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 경험”을 선사했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단 한 번의 상연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는 이유일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게 삶이니까요.”

 

이번 공연은 제14회 아트룸 블루 페스티벌의 주제 ‘실패해 보기로 했습니다’와 맞닿아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곧 실패할 용기를 가진다는 뜻, 그리고 그 실패를 감싸안을 수 있다는 믿음.

이도경 배우가 열연한 델마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Let’s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