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2년 만에 등기이사로 복귀하며, 한국 재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장면을 연출했다. 그의 복귀 무대는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아우르는 합작사의 초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정 회장은 전면에 나섰다.
이번 행보는 단순 직함 복귀가 아니다. 정 회장은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5명의 이사회 구성원 중 3명이 알리바바 측 인사라는 구조 속에서, 공동 경영이라는 명목 뒤에 숨을 수 있는 경영 주도권을 직접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단순히 알리바바 견제 차원이 아닌, 신세계 리더십과 그룹의 전략적 자율성을 명확히 하겠다는 선언이다.
정 회장은 2013년 이마트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룹 경영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공식 직함은 피했다. 그 결과 비등기 오너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책임은 회피하면서 실권만 쥐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복귀는 그 꼬리표를 스스로 떼고, 법적·경영상 책임을 직접 지겠다는 결단이다. “실패해도 내 책임”이라는 메시지가 그의 선택을 관통한다. 이는 오너십의 본질을 다시 보여주는 행위다.
이번 합작사업은 한중이라는 민감한 조합에서 출발했다. 개인정보 국외 유출, 소비자 데이터 활용 제한, 기술 이전, 경쟁사 유출 가능성 등 구조적 리스크가 산적해 있다. 정 회장이 직접 의장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러한 복합적 위험을 오너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내부적으로는 ‘신세계가 알리바바의 하청이 아니다’는 자존심을 세우는 행위이며, 외부적으로는 ‘공공 신뢰를 지키겠다’는 전략적 메시지다.
그렇다면 이번 복귀는 글로벌 사업의 관리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 회장은 국내외 플랫폼 사업의 냉혹한 경쟁 환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공룡과의 합작은 단순한 투자 관계를 넘어, 기술·데이터·운영 전반에 걸친 통합 전략을 요구한다. 정 회장이 직접 키를 잡음으로써, 신세계는 단순한 한국 유통기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에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신호를 시장과 투자자에게 보내는 셈이다.
또한 이번 복귀는 산업적·규제적 맥락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중 합작사업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 과정에서 개인정보 국외 유출과 관련한 우려가 제기됐다. 정 회장이 직접 이사회 의장으로 나선 것은 규제당국과 시장에 “책임은 신세계가 진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치다. 이는 글로벌 파트너십에서 흔히 발생하는 책임 회피의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전략적 행위이기도 하다.
플랫폼 시장은 이미 국경을 초월했다. 경쟁 환경이 냉혹할수록, 경영 책임과 의사결정 권한의 집중이 중요하다. 정용진 회장은 신세계라는 배의 키를 남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복귀는 책임의 무게를 직접 짊어진 ‘리더의 귀환’이다. 동시에 불확실한 시대에 오너십의 본질과 기업의 자율성을 재확인하는 행위다.
정용진의 선택은 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내 유통과 플랫폼 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책임 경영과 전략적 주도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신세계는 이번 결단으로, 외형적 성장보다 본질적 책임과 주도권 회복을 택했다. 거세게 몰아칠 바람 속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오너의 모습은, 지금 한국 재계가 가장 그리워하던 장면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