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서 타이밍은 곧 메시지다. 개인 투자자부터 대형 운용사까지, 모두가 숫자만큼이나 ‘언제’ 일이 일어났는지를 주목한다. 그런데 삼양식품의 1천억원 자사주 매각은 그 시점만으로 시장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는 구조 개편이 예고된 나흘 전, 기업이 수년간 쌓아온 자사주를 한 번에 털어낸 것이다.
겉으로는 “성장 투자 재원 확보”라고 하지만, 법 개정이라는 변수를 고려할 때 이 같은 대규모 결정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부른다. 정말 필요한 돈이었는가, 아니면 규제가 닫히기 전에 출구를 찾으려 한 것인가. 경제정책 변화가 기업 재무 의사결정과 맞물릴 때, 그 계산법은 시장 질서와 주주권과 직결된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자금 마련’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삼양식품이 상법 개정안 발의 나흘 전 1천억원 규모 자사주를 ‘기습 매각’한 결정에서 시장이 가장 의심하는 대목은 명분보다 계산법이다. 설비투자 자금 마련이라는 설명이 존재하지만, 실제 숫자를 대입하면 ‘필요한 돈’과 ‘털어낸 돈’의 규모가 맞지 않는다. 업계는 “삼양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삼양식품이 내세운 명분은 중국 저장성 공장 증설이었지만, 정작 추가 소요 비용은 58억원에 불과했다. 시장의 의문은 단순하다. 왜 58억원이 필요한데 994억원을 매각했는가. 삼양식품은 이미 현금흐름이 우수하고, 다른 조달 수단도 충분한 기업이다. 그럼에도 굳이 자사주라는 ‘준(準)자본’을 던질 이유가 없다. 3년 전 “주주가치 제고와 성과보상”을 앞세워 사들였던 자사주가 소각도 보상도 아닌 ‘현금 재원’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시장 신뢰를 흔든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숨겨진 계산은 규제 회피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5일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기존 보유분에도 유예기간 후 동일 규제를 적용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삼양식품의 매각일이 법안 발의 나흘 전, 즉 규제 도입 직전이라는 점이다. 소각되면 자본에서 사라져 주주에게 귀속되지만, 규제 직전 매각은 기업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으로 바뀐다. 경제학적으로는 ‘소각 강제’라는 제도 변화 앞에서 현금화 옵션을 선제적으로 행사한 셈이다.
자사주를 넘긴 상대 역시 논란을 키운다. 장기 우량투자자가 아닌 단기 차익형 헤지펀드였다. 그 중 점프트레이딩은 고빈도매매(HFT) 기반 프랍 트레이딩 업체로 알려져 있어, 자사주가 시장 안정성보다 단기 매물 압박으로 전환될 위험이 커졌다. 실제로 매각 후 삼양식품 주가는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업계는 “중장기 기업 가치 관점에서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며, 자사주를 ‘주가 안정 장치’에서 ‘단기 매물’로 바꿔버린 것”이라고 평가한다.
문제의 본질은 삼양식품이 왜 굳이 지금, 그것도 1천억원이나 되는 자사주를 팔아치웠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기업이라면 회사채 발행, 은행 차입, 내부 유보금 활용 등 다양한 옵션이 존재했지만, 삼양식품은 이를 외면했다. 오직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 자사주를 현금화하는 선택만 취했다. 성장 재원 확보라는 설명과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와 학계는 이번 사례가 상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자사주를 다량 보유한 다른 기업들에게 “규제 전에 털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통한 주주환원 강화라는 정책 목표가 오히려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양식품은 “장기 성장 기반 확보를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남는 질문은 세 가지다. △왜 58억원이 필요한데 994억원을 매각했는가, △왜 규제 발의 직전에 매각했는가, △왜 장기 투자자가 아닌 단기 헤지펀드를 선택했는가.
삼양식품이 이 질문들에 합리적 경제 논리로 답하지 않는 한, 이번 ‘D-4 자사주 털기’는 성장 전략이 아닌 전형적인 규제 회피형 자본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