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원짜리 국가 프로젝트의 간판이 두 기업가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수많은 금융·산업 전문가를 두고 왜 박현주와 서정진을 선택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인선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성장펀드는 새 정부 경제정책의 ‘첫 문장’이자 한국 경제 프레임의 재설계를 향한 신호탄이다. 그 첫 문장에 정부는 관료도, 금융 전문가도 아닌 두 명의 기업가를 올려놓았다.
이 선택은 곧바로 정책의 정체성과 방향을 설명한다. 정부는 ‘민간 주도 성장’이라는 메시지를 최대한 강하게 시장에 발신하려 하고, 그 메시지를 가장 선명하게 상징할 인물로 박현주와 서정진을 택했다. 그러나 상징적 선택은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낳는다. 정책의 얼굴이 바뀌면, 정책의 책임 구조도 함께 바뀌는가? 150조 원이라는 전례 없는 규모를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이미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 성공 가능성을 가르는 실질적 기준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정부가 이 펀드를 설계하면서 5대 금융그룹을 사실상 배제했다는 것이다. 규모와 리스크를 고려하면 시중 금융사가 참여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정부는 처음부터 금융지주와 거리를 두는 선택을 고수했다.
그 배경에는 복합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첫째, 금융지주가 참여하는 순간 ‘관치펀드’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혁신’과 ‘민간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은데, 금융지주 중심의 구조는 이 프레임과 충돌할 수 있다. 둘째, 금융지주는 건전성 규제를 강하게 받는 만큼 정부가 원하는 ‘속도감 있는 고위험 투자’에 제약이 따른다. 셋째, 금융지주들은 이미 중소기업·서민금융 등 다양한 정책적 부담을 안고 있어, 새 정부 대표 프로젝트에 추가로 얹기에는 정치적·여론적 부담이 상당하다.
결국 정부는 정통 금융 대신 기업가의 얼굴을 전면에 세움으로써, 상징성과 정치적 부담을 동시에 관리하는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그러나 상징은 언제나 힘과 위험을 함께 갖는다. 개인의 브랜드 파워가 정책의 신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개인의 판단·철학·사업적 이해가 정책 방향에 과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150조 원은 특정 기업가의 직관으로 개척할 수 있는 규모를 이미 넘어선다. 따라서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얼굴’이 아니라 제도 설계, 견제 장치, 감시 체계다.
그렇다고 박현주·서정진 체제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누가 앞에 서느냐’보다 ‘어떤 구조가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가’, ‘그 구조가 국민경제에 어떤 성과를 낳는가’다. 정부가 기대하는 ‘혁신의 상징성’이 투자 심리를 당기고 시장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징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반작용은 고스란히 정책 신뢰도 하락으로 돌아온다.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수년간 새 정부 경제정책의 성적표를 결정할 핵심 도구가 될 것이다. 150조 원이라는 규모는 구호가 아니라 구조, 이벤트가 아니라 전략을 요구한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실질적 흔적을 남길 제도적 개혁이어야 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더 이상 ‘누가 대표 얼굴이냐’가 아니다. 이 거대한 자본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책임 구조 아래 집행될 것이냐이다. 정부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곧 국민성장펀드의 평가가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