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정릉골 재개발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조합원 총회라는 최소한의 의사결정 절차 없이 입찰보증금 700억 원이 반환되고 다시 회수되는 계약 구조 변경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금융비용과 이자 부담이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됐다. 총회 없는 700억 원의 이동은 돌려준 쪽도, 돌려받은 쪽도 모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위반 소지가 짙은 사안이다.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도 시공사와 행정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위기는 구조적으로 고착됐다. 그 결과는 이자 미납 위기와 조합원 신용도 하락이라는 현실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정릉골 재개발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지금이라도 위기를 막을 방법은 무엇인지 짚기 위해 3회에 걸친 심층 기획 시리즈를 보도하고 있다. 1·2편에서 총회 의결 없이 이뤄진 700억 원 규모 계약 변경의 실체와 이를 사실상 방치한 시공사와 행정의 책임을 짚었다면, 이번 3회에서는 사안의 본질을 법의 잣대로 정리하고, 책임과 정상화의 방향을 분명히 한다.

정릉골 재개발의 위기는 이제 “잘못됐다”는 평가를 넘어 “누가 어떤 법을 어겼고,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내부 갈등이나 재정 악화가 아니다. 도정법이 예정한 재개발 의사결정 질서가 무너졌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①편에서 본지는 총회 의결 없이 중대한 계약 구조가 변경된 과정을, ②편에서는 이를 인지하고도 제동을 걸지 않은 시공사와 구청의 책임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분명하다. 법 위반 여부를 명확히 하고, 책임의 방향을 정리하는 일이다.
■ 총회 없는 700억 반환·회수, 명백한 도정법 위반
이번 사안의 핵심은 단순하다. 입찰보증금 700억 원을 조합원 총회 의결 없이 반환한 행위, 그리고 아무런 적법 절차 없이 이를 다시 회수한 구조 자체가 모두 도정법 위반 소지를 안고 있다. 재개발 사업에서 시공사의 입찰보증금은 계약 이행과 사업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장치다. 이런 금액을 시공사의 공식적 요청이나 총회 의결 없이 조합장이 임의로 돌려줬다는 설명은 상식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 비용만 최대 20억 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위법 소지가 있는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챙기고, 그 부담은 조합원에게 전가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포스코이앤씨는 이자비용 20억 원까지 챙겼다.
■ 시공사는 정말 책임이 없는가…‘선정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공사 포스코이앤씨 역시 이 사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시공사는 올해 들어 잇따른 사망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문제까지 불거지며 대통령에게 공개 경고를 받은 상황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시공사로서는 도정법 위반 사안만큼은 어떻게든 피해가려는 법률적·전략적 대응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서는 시공사 선정 취소까지 거론될 수 있는 중대한 법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총회 의결이라는 기본 요건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계약 구조 변경에 동참했다면, 이는 단순한 ‘조합 내부 문제’가 아니라 계약 당사자로서의 책임 회피에 해당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 이번 사안과 관련한 시공사의 언론 대응 방식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본지는 본 시리즈 보도에 앞서 사실관계 확인과 반론권 보장을 위해 포스코이앤씨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했으나, 기사 게재 전까지 어떠한 회신도 받지 못했다. 이후 기사가 보도된 뒤에야 포스코이앤씨 측은 입장을 전해왔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정릉골 재개발 사업은 조합원 간 갈등이 심화된 사업장으로 파악됐다”며 “오해나 분쟁의 소지가 우려되는 만큼, 서면으로 조합을 통해 공문을 보내면 그에 따라 답변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응은 사전에 제기된 구체적 질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책임의 초점을 ‘조합원 갈등’으로 옮기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공공성이 강한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라면, 기사 게재 이전에 사실관계에 대해 성실히 설명하고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언론 대응 관행에 가깝다.
총회 의결 여부, 계약 구조의 적법성 등 핵심 쟁점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절차의 문제다.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조합을 경유한 공문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앞세운 대응은, 사안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접근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시공사의 책임은 법적 대응 여부 이전에, 투명한 설명과 책임 있는 소통에서 출발한다.
■ 구청의 ‘조건부 개입’, 도정법에 따라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
성북구청의 역할 역시 다시 짚어야 한다. 그동안 구청은 ‘조합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사실상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자율의 문제가 아니다. 도정법이 직접 작동해야 할 영역이다.
향후 구청의 개입은 모호한 중재나 형식적 지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총회 정상 개최 여부, 계약 변경의 적법성, 자금 흐름의 투명성 등 법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행정이 개입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의무다. 단, 시공사나 기존 조합 집행부와의 유착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정성과 독립성은 전제로 깔려야 한다.
■ 여전히 남아 있는 ‘조합 편 들기’…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사와 천재진 전 조합장, 이른바 ‘구 조합’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는 일부 조합원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재개발의 정상적 마무리나 조합원 피해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조합을 방패 삼아 공사 과정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이권을 유지·확보하려는 행태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본지의 시리즈 1·2편이 보도된 이후,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조합 단체 대화방에서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 검증이나 반박이 아닌, “인터넷 언론사는 하루면 만든다”, “돈 받고 기사 써주는 잡지다”, “시골 노인들에게나 통하는 수작질”과 같은 근거 없는 비난과 인신공격성 발언이 공개적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의 수준을 넘어선다. 불특정 다수가 열람하는 공간에서 사실 확인 없이 특정 언론사와 기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발언을 반복할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은 물론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비판은 자유지만, 허위 사실이나 근거 없는 평가를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히 법의 영역이다.
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매체가 아니다. 30년 넘게 경제·산업·부동산 현안을 다뤄온 중견 언론사로서, 재개발 현장에서 반복돼 온 구조적 문제와 법 위반 소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해 왔다. 기사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정정 요청과 반론 제기는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나 기사의 본질에는 답하지 못한 채 언론과 기자를 공격하며 물타기에 나서는 행태는, 오히려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 위기를 넘을 수 있는가…결국 선택의 문제다
정릉골 재개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침묵과 변명 위에서는 어떤 정상화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총회 없는 700억 원의 이동, 도정법 위반 소지, 20억 원에 이르는 이자 부담, 이를 방치하거나 묵인한 시공사와 행정, 그리고 문제 제기 대신 공격으로 대응하는 일부 세력까지,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위기를 만들었다.
이 사태를 “이미 벌어진 일”로 덮는 순간, 정릉골 재개발은 더 깊은 법적 분쟁과 더 큰 조합원 피해로 향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지금이라도 법과 절차의 자리로 되돌린다면 위기는 정상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책임을 묻지 않는 조합은 다시 같은 위기를 반복한다. 도정법을 바로 세우지 않는 재개발은 언제든 다시 무너진다. 정릉골 재개발의 미래는 더 이상 특정 인물이나 세력의 이해관계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가 법 앞에 설 것인가. 그리고 누가 조합원의 편에 설 것인가. 그 선택이 지금, 정릉골 재개발의 성패를 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