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스닥은 축하와 물음표가 동시에 작동하는 숫자다.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리며 한국 증시는 ‘될 수 있는 시장’임을 증명했다. 숫자의 돌파가 아니라 신뢰의 회복이었다. 이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코스닥으로 향한다. 코스닥 1000포인트, 이른바 ‘천스닥’은 지수 그 자체보다 그 이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를 묻는 기준점이다. 오천피가 신뢰의 문을 열었다면, 천스닥은 그 문을 통과할 자격을 시험하는 단계다.
천스닥이 오면, 유동성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코스닥은 오랫동안 개인 중심의 기대 시장이었다. 그러나 지수가 네 자릿수에 안착한다면 이는 단기 자금이 아닌 중·장기 자금이 흘러들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ETF를 통한 적립식 투자, 연기금의 부분적 편입, 외국인 접근성 개선 없이는 천스닥은 유지될 수 없다. 천스닥은 유동성의 ‘양’이 아니라 ‘질’을 요구한다.
천스닥이 오면, 코스닥의 정체성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다. 코스닥은 혁신 기업의 요람이었지만, 동시에 ‘졸업장이 없는 시장’이었다. 기업이 성장하면 코스피로 떠나는 구조가 반복되는 한, 코스닥은 영원히 예비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천스닥은 묻는다. 이 시장은 우량 기업이 남아 있을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가.
천스닥이 오면, 정책의 관용은 끝나고 관리의 시간이 온다. 지수가 높아질수록 정책의 책임도 무거워진다. 상장 유지 요건, 부실기업 퇴출 속도, 공시 신뢰도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다. 천스닥은 ‘키워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관리하라’는 주문이다. 시장을 키우는 것과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천스닥이 오면, 개인 투자자의 역할도 바뀐다. 이 구간에서는 테마와 소문보다 실적과 구조가 중요해진다. 단기 변동성에 기대는 투자는 가장 먼저 흔들리고, ETF와 실적 기반 성장주는 상대적으로 버틴다. 천스닥은 개인에게도 ‘참여자’에서 ‘주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천스닥이 오면, 증시는 실물 경제와 더 깊게 연결된다. 주가 상승은 소비 심리를 움직이고, 소비는 다시 기업 실적으로 돌아온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장기 평균을 웃돌고, 투자 소득이 생활형편과 소비지출을 자극하는 흐름은 이미 확인됐다. 천스닥은 금융 이벤트가 아니라 경제 순환의 한 축이 된다.
그래서 천스닥은 목표이자 시험이다. 지수 1000은 단순한 축하의 숫자가 아니라,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준비가 됐는지를 묻는 기준선이다. 천스닥이 온다면 코스닥은 더 이상 ‘가능성’만으로 평가받는 시장이 아니다. 우량 기업이 남고, 부실 기업이 자연스럽게 걸러지며, 자금이 변동성보다 구조를 바라볼 때 비로소 천스닥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 숫자는 잠시 스쳐 가는 기록에 그칠 것이다.
코스피가 국가 신뢰의 바로미터라면, 코스닥은 혁신의 체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천스닥은 그 무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다. 오천피가 한국 증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천스닥은 그 가능성을 얼마나 오래 지켜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시장은 박수와 함께 질문을 던진다. 이제 진짜 시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느냐고.
지금 한국 증시는 상승의 끝이 아니라 성숙의 초입에 서 있다. ‘얼마나 오를 수 있느냐’는 질문은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남을 것이냐’다. 숫자는 올릴 수 있지만, 시장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천스닥은 랠리의 종착지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문턱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