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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김대중의 이름으로, 언론을 압박하는가

재단 이름, 왜 사업에 등장했나
낙찰은 따로, 이름은 함께였다
설명 대신 “허위 보도”로 언론 압박
김대중 이름, 제대로 쓰고 있나

민주주의의 상징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지난 2월 10일자 본지는 한 마트 사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서 김대중재단의 이름이 등장하는 정황을 구조적으로 짚었다. 보도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공익 재단의 상징성이 영리 사업의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됐는지, 그리고 그 경계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보도의 본질은 단순한 구조적 의혹 제기에 있지 않았다. 해당 사업 과정에서 기존 마트 임직원과 협력업체 종사자, 그 가족들까지 포함해 천여 명에 달하는 생계가 위협받거나 끊긴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기사는, 공익과 책임을 내세운 구조 속에서 실제로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를 묻는 기사였다.

 

핵심은 단정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본지는 재단이 직접 낙찰을 받았다고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낙찰은 경보유통”이라는 당사자의 해명을 기사에 반영했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인사가 김대중재단 직함이 적힌 명함을 들고 공공기관 면담에 참여한 사실도 확인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낙찰 주체는 따로라면서, 협상과 면담 과정에서는 재단의 이름이 등장한다면 이는 단순한 직함 사용의 문제가 아니다. 공익 재단의 상징이 영리 사업과 뒤섞였을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야 하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재단의 대응은 설명이어야 했다. 면담이 있었는지, 투자 관련 언급이 있었는지, 재단 명함 사용이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면 된다. 그러나 재단이 선택한 방식은 설명이 아니었다.

 

재단은 곧바로 법적 압박을 앞세웠다. 본지에 24시간 내 근거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불응 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게시금지까지 예고했다. 문제는 그 이전에 무엇이 허위인지에 대한 구체적 반박이 없었다는 점이다. 항목별 설명 없이 “전면 허위”라는 선언만 남았다.

 

이 대목에서 성격은 분명해진다. 언론에 대한 과도한 자료 요구, 단기간 시한 설정, 즉각적인 법적 조치 예고. 이는 통상적인 반론 요청의 범위를 넘어선다. 사실상 비판 보도를 법적 부담으로 압박하는 방식, 즉 언론의 자유로운 문제 제기를 위축시키는 구조다.

 

그래서 이 사안은 단순한 분쟁이 아니다. 공익 재단이 스스로를 검증 대상이 아닌 ‘비판이 어려운 영역’으로 만들려 할 때, 그 순간부터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김대중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그는 언론 통제의 피해자였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정치인이었다. 질문을 억압하는 권력과 싸웠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판 보도에 대해 사실로 답하는 대신, 법적 압박으로 대응하는 구조. 이는 김대중의 정신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상징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것이 안타까운 이유다. 

 

공익의 이름은 신뢰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 상징은 훼손된다. 그리고 그 훼손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 사안이 무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특정 사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기관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익 재단의 이름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투명했는지를 묻는 문제다. 이는 공공성의 문제이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문제다.

 

재단이 억울하다면 선택지는 단 하나다.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모든 의혹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하라. 면담 일정, 직함 사용 경위, 내부 승인 구조, 이해충돌 방지 체계까지 투명하게 설명하라. 그것이 공익 재단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명 방식이다.

 

법적 압박은 해명이 아니다. 특히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이름은 보호막이 아니라,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 자리다.

 

김대중의 이름은 방패가 아니다. 그 이름은 질문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질문을 통과시키는 문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질문을 허용하는 체제다. 그리고 질문을 막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지금 재단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답하는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