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의 인물 캐리커처. 노벨상위원회 누리집에서 캡처
기자는 한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대표작을 골라 읽은 적이 있었다. 3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은 ‘백년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이다. 남미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무언가 우리 정서와 닿아 있을 것이란 느낌이 왔다. 실제 내용도 예상대로였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사촌 여동생 우르술라 이구아란과 근친상간적 결혼생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이 세운 남미 처녀림 속의 마콘도라는 새로운 도시가 대를 이어 반복되는 근친상간의 혼돈 속에 몰락하는 과정을 역사와 전설적인 요소를 가미해 엮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67년 처음 출간된 후 32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작가는 자신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조국 콜롬비아를 전 세계에 알렸다. 중남미 작가로는 칠레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1945년), 파블로 네루다(1971년)와 과테말라의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1967년)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였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 프랑스의 작가 쉴리 프뤼돔이 첫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유럽과 미국이 거의 차지하다시피한 상이었다.
마르케스의 책을 읽으며 기자는 콜롬비아는 작가 한 사람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문학을 알리게 됐으니 얼마나 좋을까 참 부러웠다.
사실 ‘백년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이야기, 정서, 한(恨)도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벨문학상을 우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딴 세계의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한편으론 우리는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도 부러웠다. 더욱이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 그리고 중국의 모옌(2012년)이 이미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라 속마음은 많이 조급해져 있었다. 한때 시인 서정주와 소설가 황석영 등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됐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국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10일 저녁 SBS 8시 뉴스를 시청하다가 기자는 소스라칠 뻔했다. 앵커가 한창 뉴스를 진행하는 중에 화면에 ‘작가 한강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속보 자막이 떴다. 순간 전율이 왔다. 저게 진짜인가, 거짓은 아니겠지. 앵커는 자막대로만 얘기하고, 자세한 소식은 나중에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기자는 즉시 확인을 해야 했다. 기자의 본능이었다.
구글에 들어가 ‘노벨상(Nobel Prize: www.nobelprize.org)’을 검색했다. 메인 화면엔 ‘노벨문학상 2024 한강’이란 문구와 한강의 인물 캐리커처가 올라 있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은 한국 작가 한강에게 수여된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분명하게 나와 있었다. 이 뿐만 아니었다. 한강의 약력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밑에는 스웨덴 아카데미 상임 비서인 마츠 말름이 한강에게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발표 내용이 유튜브로 올라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아니 이런 일도 있나. 우리가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다니...
기자는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게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대한민국이 6·25 전쟁의 상흔을 딛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 세계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았듯이, 오늘 다시 그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경제 발전이 아니라 한강의 작품으로서 말이다.
당연하지만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의 언론에서도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에선 즉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코너가 설치되는 등 난리가 났다.
11일자 조간신문에선 일제히 ‘한강, 한국 작가로는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기사가 톱뉴스로 나왔다.
한강이 누구이며, 한강의 작품은 어떤 게 있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사람들은 궁금해 하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보도도 있다. 오늘 하루, 아니 며칠쯤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도 괜찮을 것이다.
요즘처럼 팍팍한 시절, ‘한강 신드롬’이 당분간 계속되었으면 싶은 바람이다.
작가 한강에게 무한한 축하를 보낸다.
이건 작가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임이 분명할지니...
김대진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