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오명숙 기자 | 순천만의 겨울이 특별해졌다. 한때 700m 거리에서만 볼 수 있던 흑두루미가 이제 불과 20m 앞까지 다가와 탐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신뢰가 쌓인 덕분이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된 희귀 겨울철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도 ‘절멸 가능성이 높은 취약(VU) 종’으로 분류할 만큼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순천만은 마지막 남은 국내 흑두루미 월동지였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낚싯배 운항으로 인해 이들을 일본 이즈미로 떠나보내야 했다. 2006년,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단 167마리뿐이었다.
하지만 순천시는 이를 방관하지 않았다. 노관규 시장은 "순천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생태 복원을 강력히 추진했다. 환경을 저해하는 시설을 철거하고, 전봇대 282개를 없애 충돌 사고를 방지했으며, 농민들과 협력해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흑두루미 개체 수는 2006년 167마리에서 2024년 7,606마리로 급증했다. 이제 순천만은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 수의 절반이 월동하는 철새들의 성지가 되었다.
과거 흑두루미는 사람의 기척을 감지하면 700m 이상 거리에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순천만의 환경이 점차 안정되면서, 500m, 300m, 80m로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제는 20m 거리에서도 날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탐조 거리의 변화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순천만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을 지키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국제두루미재단(International Crane Foundation) 관계자들은 최근 순천을 방문해 이 사례를 세계적으로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순천시는 올해도 흑두루미 보호를 위한 추가 조치를 진행 중이다. 안풍들 지역에 전봇대를 지중화하고, 논을 물이 가득 찬 상태로 유지하는 ‘무논(無論)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국가정원과 순천만 사이의 농경지 35ha를 매입해 생태축을 확장하고, 도심까지 자연성을 연결할 계획이다.
오는 5월에는 세계습지의 날과 세계철새의 날을 맞아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과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며, 11월에는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순천의 생태 보전 노하우를 전 세계에 공유할 예정이다.
노관규 시장은 “순천만은 이제 흑두루미,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흰기러기 등 희귀 겨울철새들의 낙원이 되었다”며, “앞으로도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