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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상법개정, 증시 불쏘시개 되다

정치가 만든 반등, 시장은 제도로 응답했다
대주주 중심 경영에서 주주 전체 이익으로 이동
코리아 디스카운트, 지배구조 개편으로 해소될까
코스피 5,000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과제다

지이코노미 문채형 기자 | 2025년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찍혔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여야 합의 법안인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증시는 1년 4개월 만에 코스피 3,100선을 돌파했다. 개정 상법의 골자는 간결하지만 파급력은 컸다. '대주주 중심의 경영'에서 '주주 전체의 이익을 반영하는 지배구조'로 축이 이동했다. 정치와 제도가 만들어낸 변화의 신호탄에 외국인과 기관은 즉각 반응했다. 장기 침체와 신뢰 상실에 시달리던 한국 자본시장이 드디어 정치·제도·수급의 3박자 개선을 기반으로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는 기대가 시장을 달궜다.

 

 

7월 3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1.34% 오른 3,116.27에 마감했다. 외국인은 6,784억 원, 기관은 6,022억 원 순매수한 반면, 개인은 1조 3,082억 원을 순매도했다. 지난달 3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코스피는 약 14.4% 상승했다. 대통령 취임 첫 달에 이뤄낸 이 같은 지수 상승은 이례적이다. 시장은 이를 단기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한 ‘코스피 5,000 시대’가 제도 개편을 통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은 이번 상법개정안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조항,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은 기업지배구조의 힘의 중심을 바꿨다. 전자주총 의무화와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도 함께 포함되면서, 소액주주 권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장치들이 촘촘히 마련됐다. 한국식 재벌 경영의 핵심 구조에 메스를 댄 것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총수 중심 경영을 꼽아 왔다. 이번 개정안이 이 구조를 정면으로 건드리자,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 일부 글로벌 운용사는 한국 시장에 대한 전략 등급을 상향 조정했고, ESG 평가 기관들도 지배구조 항목에 긍정적 점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증권사들은 이미 수혜를 누리고 있다. 거래대금 증가로 수탁 수수료 수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 수탁 수수료 수익은 1조 6,854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삼성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이 상위권을 형성했다. 리테일 기반이 강한 대형사일수록 이번 제도 변화의 ‘정책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대기업 총수 일가가 우려하는 ‘경영 의사결정 지연’ 가능성이다. 일부 그룹은 3%룰이 경영권을 제약해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에서 민첩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배력 약화 → 투자 위축 → 성장 정체’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것이다. 법제화는 성공했지만, 시장이 그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이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 이행력을 뒷받침할 후속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세제 개편(예: 거래세 폐지, 금융투자소득세 정비), 전자주총 시스템 고도화, 공시 투명성 강화 등 복합적 정책 정비가 따라붙지 않으면, 이번 개정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 수 있다. 법은 바뀌었지만, 시장이 느끼는 ‘신뢰’는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

 

정치가 흔든 시장, 이제는 시장이 정치에 묻는다. 상법개정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대주주 중심의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책임 있는 주주자본주의’로 전환되는 분기점이다. 이재명 정부가 그 첫 장을 열었고, 시장은 환호로 응답했다. 하지만 제도 변화의 방향이 아무리 올바르다 해도, 실제 시장의 체질을 바꾸려면 기업의 투명한 실행, 정부의 정책 연속성, 투자자의 책임 있는 선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코스피 5,000은 정부 혼자 도달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제도 설계자 모두가 만들어내야 하는 신뢰의 결과물이다. 정치는 시작을 열었고, 이제 시장이 그 지속가능성을 시험하려 한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