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서주원 기자 | “혼란의 역사 속에 흔적 없이 묻혀버린 경허 대선사의 가슴 아픈 진실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그토록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디면서 시절 인연을 기다려 왔는데, 오늘 드디어 그 보따리를 풀어 경허 대선사의 진면목을 세상에 알릴 다부진 발걸음을 떼다니, 참으로 감탄할 일입니다. 작가님, 동행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25년 7월 29일, ‘경허기념관’ 홍현지 관장은 ‘동학사(東學史)-녹두장군의 멘토, 손위 처남 경허선사’ 연재의 말문을 여는 내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홍 관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월간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 창간 준비 과정에서다. 창간호에 게재할 콘텐츠 아이템을 찾던 중 홍 관장과 관련된 ‘경허기념관(鏡虛紀念館)’과 ‘경허연구소(鏡虛硏究所)’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전한 사람은 뱅기노자 백승기 대표였다.
‘녹두장군은 경허선사의 매제다. 경허선사 여동생은 녹두장군의 본부인으로 두 명을 딸을 낳았고,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 그 뒤 인연을 맺은 두 번째 부인이 두 명의 딸을 낳았다…’는 것이 그 정보의 골갱이였다.
나와 백 대표 등 3명은 7월 21일 일요일 오후, 홍 관장을 만나기 위해 인사동에서 걸음을 조계사 쪽으로 옮겼다. 경허기념관 간판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편 건물에 걸려 있다는 걸 우리는 사전에 알고 있었다. 백 대표는 일요일인 그날, 홍 관장이 조계사 맞은편 건물에 위치한 경허기념관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며칠 전, 백 대표는 홍 관장과 전화 통화로 방문 목적을 밝힌 바 있다.
안타깝게도 그날 나는 홍 관장을 만나지 못했다. 홍 관장과 전화 통화를 마친 백 대표는 “경허기념관이 강남구 청담동으로 이전됐다”고 말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홀로 청담동에 경허기념관을 찾아갔다. 7호선 강남구청역 4번 출구 앞으로 마중을 나온 홍 관장을 따라서 경허기념관에 도착했다.
홍 관장은 경허기념관 안팎의 전시물과 소장품 등을 내게 소개했다. 경허기념관 실내에서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마주 앉은 뒤에 시작된 말길은 홍 관장의 눈물 바람으로 트였다.
“경허 대선사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이것 좀 보시라. 작가님이 방문한다고 해서 미리 준비한 자료다.…”
홍 관장이 내게 내민 자료의 큰 제목은 ‘큰스님 경허 스님, 작은 스님 전봉준 장군’이었다. 인터넷 뉴스 포털을 검색해서 프린트한 자료엔 ‘[조용헌의 영지순례] 경허스님과 전봉준의 사연이 깃든 마이산의 고금당’, ‘홍현지 경허연구소 소장 인터뷰-경허스님 선양사업을 하는 이유는?’, ‘한국근대불교 대선지식 경허스님 선양사업 본격화’ 등의 기사가 포함돼 있었다.
멘토(mentor),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다. 손위 처남, 아내보다 먼저 출생한 처남을 간접호칭으로 ‘손위 처남’ 또는 ‘맏 처남’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호칭은 ‘형님’이다.
동학 150주년인 2024년, 출판사 ‘아카넷’은 ‘동학사’를 펴냈다. 부제는 ‘새 세상을 꿈꾼 민중을 기록하다’.
다음은 ‘아카넷’이 써놓은 출판사 서평의 일부다. ‘저자 오지영은 익산 지역에서 동학농민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동학이 천도교로 전환된 이후에도 혁신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 만주에 있는 기간 동안 동학사의 초고를 작성하고, 귀국 후 수정을 거쳐 1940년 영창서관에서 이 책을 정식 간행하였다. 그가 이 책에서 동학의 내부자로서 기록을 세세히 남긴 덕분에 동학 지도자들의 발언과 토지 분작, 천민의 처우 개선 같은 농민들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들을 알 수 있다.…’
오지영의 ‘동학사’ 정식 간행 85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인 올해 광복절에 즈음해서 나는 ‘경허기념관 홍현지 관장의 동학사(東學史)’를, ‘녹두장군의 멘토, 손위 처남 경허선사’라는 제목으로 편저(編著)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동학의 땅 부안 출신이고, 장편소설 ‘봉기’의 작가지만 나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부족하다. 방송작가이자 소설가라는 직함을 내걸고는 있지만 내 글솜씨는 아직도 서툴고, 어쭙잖고, 다듬을 구석도 많다.
하지만 경허선사를 받들어 모시며 수십 년 동안 경허선사의 행장을 탐구한 경허기념관 홍현지 관장의 노고와 역량을 믿고 존중하기에 분명 앞으로 빗발치게 될 남들의 비난과 비판을 감수하며 이 편저의 길에 나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