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에서 터진 24억 원대 금융사고. 은행은 “개별 차주의 불법 매각”으로 규정했지만, 이는 본질을 가리려는 얕은 변명에 불과하다. 금융기관이 애써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국민의 돈을 담보로 한 신뢰는 또다시 무너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공장근저당이었다. 토지·건물뿐 아니라 기계·설비까지 담보로 설정해 대출을 내준 건데, 문제는 이 기계와 설비들이 은행의 표식과 등기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차주에 의해 불법 매각됐다는 점이다. 은행은 “6개월마다 현장 점검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정기 점검만으로 동산 담보를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무책임하다. 이동성이 큰 기계와 설비는 언제든 ‘그림의 떡 담보’가 될 수 있음을 은행은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은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며 내부 통제의 책임을 축소한다. 그러나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금융권을 구제해온 역사를 돌아보면, 은행의 무책임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사기 사건’으로 축소한다면, 금융사고는 은행 곳곳에서 되풀이될 것이다.
금융권도 자유롭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은 공통 리스크”라고 인정하듯, 담보 관리 체계는 이미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다. 담보 평가와 사후 관리 절차가 형식적 점검에 머무르고, 동산담보대출 제도는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정부가 2019년 도입한 동산금융정보시스템(MoFIS)과 IoT 관리 제도도 사실상 반쪽짜리였다. 일괄담보제 같은 핵심 개선 과제는 미뤄지고, 사고는 계속된다.
결국 해답은 제도적 전환이다. 은행권은 더 이상 ‘차주 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동산 특성에 맞는 별도 관리 체계와 실질적인 모니터링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IoT·GPS 관리, 실시간 추적 시스템 등 비용이 들더라도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분명해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은행의 사고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허술한 기반을 드러낸 경고다. 담보 관리 제도의 법적 공백을 메우고, 불법 처분에 대한 은행 회수 권한과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새 정부의 금융 개혁 과제다. ‘금융사고는 곧 국민 피해’라는 점에서, 이는 더 이상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은행은 차주의 불법 행위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관리 부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금융사고를 반복해온 구태를 끊어내야 한다. 실질적 제도 개선과 금융권 책임 강화 없이는, ‘또 다른 24억’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