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세습’이라는 총수 일가의 사익 아래 공정시장 원칙이 무너졌다.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은 자신의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회사 자원을 불법적으로 이동시킨 혐의로 최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내부 자원을 ‘사유화’하고 직원들의 반대를 묵살한 채 밀어붙인 일감 몰아주기 행위는, 대한민국 재벌 지배구조의 뿌리 깊은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4일 정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함께 기소된 홍성원 전 삼표산업 대표는 공정거래법 위반 외에 배임 혐의가 추가됐다.
정 회장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삼표산업이 원재료를 구매할 때 장남이 지배하는 계열사 ‘에스피네이처’에서만 거래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 평균가보다 4% 비싼 가격으로 납품을 강행, 삼표산업에 약 74억 원의 손실을 떠넘기고 에스피네이처에 동일 금액의 부당이익을 안겼다. 내부에서 “회사가 손해를 본다”는 항의가 이어졌지만, 정 회장은 묵살했다. 검찰은 이를 “장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획적 행위”로 규정했다.
해당 사건은 공정위가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검찰은 압수수색과 관련자 조사를 통해, 정 회장이 직접 불법 지원 구조를 설계·지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에스피네이처 최대주주이자 수익자인 정대현 부회장은 직접 공모 정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조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전형적인 세습형 일감 몰아주기”로 규정하며, 제대로 된 지배구조 개혁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한 공정경제 전문가는 “계열사 간 부당지원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오너 일가의 부 축적을 위한 구조적 범죄”라며 “특히 삼표처럼 주요 산업군 기업이 경쟁질서를 왜곡할 경우, 시장 전체에 왜곡과 비용을 전가한다”고 경고했다.
삼표그룹 측은 “에스피네이처와의 거래는 합리적 계약이었고, 승계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상적인 거래라면 경쟁 입찰이나 외부 가격 검증 절차가 필수인데, 삼표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며 “명백한 세습형 배임 행위”라고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 총수가 탈법적 세습을 위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는 엄정 대응 대상”이라며 “법인뿐 아니라 실질적 결정권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경쟁과 투명성은 시장의 생명이다. 하지만 삼표 사례는 ‘총수 일가의 무제한 권한’이 어떻게 공정경제의 기초를 무너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정 개인의 승계를 위해 기업은 사유화되고, 손해는 회사와 시장 전체로 확산된다. 거래업체·중소기업·소비자·국민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승계 목적은 없었다”는 삼표의 항변은 의미가 없다. 절차를 무시한 특혜가 곧 ‘누구를 위한 경영이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경영권 세습이 선택일 순 있으나, 공공시장 질서를 훼손한 채 강행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