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 삶의 틈에서 스며 나오는 감정의 결을 정직하게 포착해 온 박찬호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를 내놓았다. 이번 시집은 상실·회복·불안·온기 같은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화려한 비유 없이 담아내며, 일상이라는 표면 아래에서 흔들리는 내면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시집 곳곳에 마련된 여백은 독자가 자신의 언어를 덧붙일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읽기와 쓰기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형태를 띤다.
책은 「시인의 말」에서 이미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편하게 와 줘서 고마워 / 잊지 않게 해줘서 감사해 / 오랫동안 기억할게” 짧은 고백처럼 배치된 이 문장들은 지나간 시간과 관계들을 향한 담담한 애도의 방식이다. 박찬호 시학의 핵심 태도를 압축하기도 한다. 그는 절망을 과장하지 않고, 희망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절망을 견디는 마음의 결, 희망이 스스로 번지는 방향을 조용히 따라간다.
시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결핍을 통과해 존재의 자리를 다시 비추는 언어의 힘이다. 「입버릇처럼」에서는 생의 압박 속에서 몸이 금이 가는 듯한 버팀의 감각을 기록하고, 「그래도 눈이 온다」에서는 사소한 계절의 변화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의 잔광을 섬세하게 붙잡는다. 「동생2」는 감정의 과잉을 피한 채 사실의 결만으로 상실을 드러내며, 언어가 절제될수록 감정의 울림은 오히려 깊어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반이 지났다는 이야기」와 같은 작품들은 시간의 퇴적과 그 속에서 달라지는 감정의 온도를 보여준다. 일상의 결들이 어떻게 의미를 획득하는지 탐색하게 한다. 「말씀」, 「겨울에서 봄에게로」 등은 어린 시절과 가족의 기억을 끌어와 존재의 뿌리를 더듬도록 만든다. 박찬호의 시는 특별한 사건보다 사소한 순간, 거창한 말보다 작은 말의 진실을 통해 독자에게 오래 남는 잔향을 만들어낸다.
박 시인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마케팅 업계에서 활동했다. 2020년 계간 『미래시학』 신인문학상과 『월간 시』 제29회 추천시인상을 받으며 시작된 그의 시 쓰기는 병과 좌절의 시간을 통과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지금까지 『꼭 온다고 했던 그날』,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 『그곳에 그리도 푸른 바다가 있을 줄이야』 등 세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삶의 결핍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태도는 그의 시학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라 평가받는다.
이번 네 번째 시집 『오늘따라 날은 맑았지만, 괜스레 물어본다』는 이러한 시인의 여정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조용한 언어로 삶을 비추는 그의 시는 이번에도 독자를 자기 삶의 틈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틈에서 발견되는 작은 감정의 흔들림이 바로 이 시집이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
출판사: 다시문학
-
출간일: 2025년 12월 12일
-
판형: 138×198mm, 양장
-
페이지: 112쪽
-
ISBN: 979-11-976820-8-7
-
값: 15,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