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는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지만, 구조 실패는 판결이 반복될수록 현재가 된다. 최근 법원이 라임 사태와 관련해 신한투자증권(대표이사 이선훈)의 배상 책임을 다시 인정한 장면은, 바로 그 차이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하나의 민사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무너진 금융 통제 구조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는 사법적 재확인에 가깝다.
라임 사태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금융사고가 아니었다. 2017년 이후 해외 무역금융 펀드의 부실과 편법 운용이 누적되는 동안 위험 신호는 여러 차례 감지됐지만, 레버리지 구조는 멈추지 않았고 통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2019년 대규모 환매 중단으로 폭발한 뒤에도 책임 공방과 소송은 수년간 이어졌고, 그 시간 속에서 드러난 것은 개별 위법 행위보다 위험을 멈추지 못한 구조 자체였다. 이번 판결은 그 긴 경과 끝에서 내려진 첫 결론이 아니라, 이미 반복돼 온 판단의 또 하나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더 무겁다.
이번 판단의 핵심은 배상 규모가 아니다.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지위와 역할이다. 신한투자증권이 단순한 거래 상대방을 넘어, 고위험 운용 구조가 유지되고 확대되는 과정에서 위험을 인식하고도 통제하지 못했거나 통제하지 않았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문제의 중심에 놓였다. 이는 투자 실패의 책임을 넘어, 금융 시스템 내부의 감시 기능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판결의 반복성이다. 유사한 쟁점의 다른 소송들에서도 공동 책임 인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가 특정 시점의 판단 착오나 일부 인력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구조적 결함임을 시사한다. 한 번의 사고는 우연일 수 있지만, 같은 책임이 여러 차례 확인되면 그것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구조였다.
라임 사태가 남긴 본질적 교훈도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기나 부실 운용이 아니었다. 환매 가능성보다 레버리지가 앞선 유동성 왜곡, 위험 통제보다 수익 경쟁이 우선한 인센티브 붕괴, 그리고 규제 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감독 공백이 동시에 무너지며 1조6000억 원대 환매 중단이라는 파열로 이어졌다. 그 과정 곳곳에는 위험을 멈출 수 있었던 주체들이 존재했지만, 통제는 끝내 작동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현 경영진의 메시지다.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내부통제는 외부 규제가 아니라 직원의 일하는 습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조직의 내실”이라며 통제 체계의 문화적 체화를 경영의 중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 발언들은 단순한 리스크 관리 구호라기보다, 라임 사태가 드러낸 구조적 실패, 즉 위험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했던 통제의 공백에 대한 뒤늦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문제는 선언 이후다. 사법부가 반복해 책임을 확인하는 동안, 그 ‘습관’이 실제로 조직 안에서 중단 버튼을 누를 수 있는 힘으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시장이 답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의 책임 배분 방식 역시 구조 문제를 드러냈다. 형사 처벌과 징계는 주로 운용 현장과 실무선에 집중됐지만, 구조 설계와 통제 실패에 대한 상층 책임은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남았다. 개인은 처벌됐지만 시스템은 충분히 교정되지 않았다. 판결이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사법 판단이 던지는 질문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향한다. 금융지주의 내부통제는 실제로 중단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구조인가. 레버리지와 파생 구조를 들여다보는 실질 감시 권한은 작동하고 있는가. 감독 체계는 사고 이후 수습이 아니라 사고 이전 차단에 맞춰져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라임은 종료된 사건이 아니라 잠시 멈춘 구조적 위험에 불과하다.
사법부의 판결은 언제나 마지막 단계에서 내려진다. 따라서 이번 책임 인정 역시 신뢰 붕괴 이후에야 작동한 최소한의 복구 장치다. 자본시장의 신뢰는 판결로 세워지지 않는다. 사고가 멈추는 구조로만 회복된다.
결국 이번 판결이 남긴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라임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아직 청산되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금융권이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사고는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라임이 될 것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