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소 다 함께 모이기 쉽지 않았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점심 자리를 가졌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건강’으로 모였다. 예전 같으면 웃어넘겼을 이야기들에 이제는 서로의 눈을 보며 깊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나이. 우리는 그날 말 없는 공감으로 서로의 시간을 확인했다.
식사를 마친 뒤 한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직 공기는 다소 쌀쌀했지만, 햇살만큼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강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기척이 기분 좋게 섞여 있었다. 서두를 이유도, 목적지도 없는 산책길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한강변 한쪽에서 파크골프를 즐기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두툼한 점퍼와 모자,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차림이었지만, 동작만큼은 누구보다 여유로웠다.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두르지 않는 움직임, 차례를 기다리는 침착함, 무엇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멀리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침, 한 분의 공이 홀을 향해 매끄럽게 굴러가더니 깔끔하게 '땡그랑'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나이스 샷!”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웃으며 정정해 주었다. “이럴 땐 ‘나이스 인’이라고 해야지.” “아, 그래? 파크골프에서는 ‘나이스 인’이라고 하는 거야!” 친구는 또 하나 배웠다며, 이제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나이스 샷’은 순간의 기술을 칭찬하는 말이다. 힘이 좋았고 폼이 멋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이스 인’은 다르다. 목적지에 정확히 도달했다는 의미다. 화려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결국 목적지에 닿았음을 축하하는 말이다. 그날 내가 본 파크골프는 ‘나이스 샷’의 운동이 아니라, 분명 ‘나이스 인’의 운동이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젊은 날에는 얼마나 멀리, 얼마나 세게 치는지가 중요했다. 속도가 곧 실력이었고 앞서가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잘 쳤느냐”보다 “잘 들어왔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자기 삶의 홀 안으로 차분히 들어오는 것, 그것이 진짜 ‘나이스 인’ 아닐까.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속도는 조금 더 느려졌다. 방금 본 풍경이 준 여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속도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대신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며, 함께 걷는 사람의 호흡을 살필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 파크골프를 치던 그분들의 뒷모습에는 조급함 대신 단단한 평온이 있었다.
추위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활기,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오늘 하루를 스스로 채워가는 힘이 참으로 근사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젠가 우리도 저 자리에 서 있을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공을 멀리 보내지는 못해도, 결국 홀 안으로 공을 집어넣으며 누군가에게 이런 인사를 듣고 싶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라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이스 인!”

강윤정 칼럼리스트
마중물교육파트너스 대표
힐링 인문학 강의
대인갈등 소통강의
농협주부대학‧공무원연금공단 외래강사‧한국은행 사회공헌 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