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서울 강남 주요 재건축 사업에서 책임준공 확약서 제출을 거부하며 조합과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자금력과 브랜드에 기대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이면에는 어떤 현실적 판단이 숨어 있을까.

책임준공확약서는 시공사가 준공을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공사비가 오르든, 자재가 부족하든, 시공사는 공사를 멈추지 않고 끝내겠다는 법적 확약이다. 조합과 조합원이 믿고 사업을 맡길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삼성물산은 또다시 이 확약서를 내놓지 않았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 삼성물산은 최근 몇 년 동안 서울 핵심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자신들이 “공사를 중단한 적 없는 유일한 건설사”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기보다는 ‘공사를 멈추지 않아도 조합이 손들게 만든 구조’에 가깝다.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는 당초 공사비 7,458억 원에서 1조 3,817억 원으로 85%나 뛰었다. 공사기간도 13개월 늘었다.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은 공사비가 50% 이상 증가했고, 신반포15차 역시 증액과 지연이 반복됐다. 이들 모두 책임준공확약서를 받지 못한 곳이다. 공사를 멈추지 않더라도, 조합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물산의 전략은 명확하다. 브랜드 신뢰를 방패 삼아 책임은 피하고, 공사비와 공기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조정한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신용이면 HUG 보증 없이 PF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단순히 대출 문제만이 아니다. 계약서 문구 몇 줄로는 조합이 공사 중단을 막을 수 없다. 준공 지연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조합의 몫이다.
삼성물산이 책임준공확약서를 반복 거부하는 데는 보다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 삼성물산은 자체 신용으로 사업비 조달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금융적 안전장치를 의미하는 책임준공확약서를 불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자금력이 충분한 시공사에겐 논리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조합 입장에서는 법적 확약이 없으면 공사 지연이나 비용 증가에 대한 방어막이 없는 셈이다.
또한 책임준공확약서가 요구하는 법적 구속력은 시공사가 외부 변수와 무관하게 반드시 준공을 완료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적 사유에 대한 책임 부담 증가로 인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다.
과거 사업장에서 책임준공확약서 없이도 공사 중단 없이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점도 삼성물산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조합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의 책임준공확약서 거부는 무책임의 표상이 아니라, 위험과 책임을 법적 구속 없이 조절하고, 사업비 및 공사기간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현실적 사업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정비사업의 본질인 ‘안정적이고 신속한 준공’과는 분명히 충돌한다. 조합은 법적 확약 없는 공사 진행이 불확실성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삼성물산은 자본력과 브랜드를 기반으로 신뢰를 주장하지만, 조합과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책임과 보증이다. 책임준공확약서를 통한 법적 구속력 확보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안심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삼성물산이 진정한 ‘책임지는 시공사’로 인정받으려면, 브랜드에 기대기보다 책임준공확약서 제출을 통해 그 신뢰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삼성 이재용 회장이 이 같은 정비사업의 조건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의 구조와 계약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보게 된다면, 책임을 피해가는 방식이 과연 삼성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것인지, 그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포우성7차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파워에 기대 책임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브랜드가 아닌 실질적 계약 내용을 따져 정비사업 본질을 지킬 것인가.
이제 조합이 답할 차례다. 그리고 시장이 눈을 뜰 시간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