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정길종 기자 |충북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 조각가 김복진의 고향에서 한국 조각의 성지를 꿈꾸다

2025년 7월 16일, 햇볕이 이글거리는 정오 무렵. 충북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마을 어귀를 지나 김복진 생가로 향했고, 그곳에는 간이 의자와 현수막,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봉리, 한국 조각의 성지… 가능한가?”
이날 포럼은 단순한 학술 발표가 아닌, 주민과 예술가, 평론가, 작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팔봉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타운홀 형식으로 진행됐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 마을이 예술과 삶이 맞닿은 현장이라는 믿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한국 조각의 문을 연 마을, 성지가 되어야 할 이유”
문학평론가 유영선 씨는 “성지란 아무 데나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며, “김복진 선생은 한국 조각의 선구자이며, 팔봉리는 그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의 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성지 조성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주민들과 마을 이장, 예술인들이 둘러앉아 마이크를 돌아가며 나눈 이야기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팔봉리는 단지 과거를 기리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예술이 피어나는 ‘살아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마을의 조각 축제를 이끌었던 박순양 이장은 “우리는 단지 축제를 연 게 아니라 문화를 시작했고,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을 만들고 있다”며 성지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예술은 머리가 아니라 몸과 삶으로 반응하는 것”
동화작가 오미경 씨는 팔봉리를 “동화이며, 시이며, 조각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예술은 감응이다. 주민들이 김복진의 이름을 붙잡고 마을을 바꾸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밝혔다.
주민 패널로 참여한 김병기 씨는 “목공이 취미인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예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해 큰 공감을 얻었다. 그의 말에 소박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복진을 잇는 삶, 공간으로 실현되는 예술
포럼에는 조각사 연구자인 오헨리 교수도 참석해 김복진을 “조각가이자 문화운동가”로 설명하며, “팔봉리는 그의 철학을 실현하고 있는 공간”이라 강조했다. 특히 전봇대 미술관, 건조장 미술관, 순례길 생태조각공원 등은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예술의 현장이며, 이는 곧 ‘살아 있는 조각 문화’라고 말했다.
김영주 전 공군사관학교박물관장은 문화유산 보존의 세 가지 조건—물리적 공간, 역사적 맥락, 현재의 실천—을 언급하며 “팔봉리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예술 유산의 중심”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정책과 행정이 응답할 차례”라고 덧붙였다.
“기적은 조용히 시작된다”… 팔봉리의 선언
행사의 마지막, 참가자들은 ‘한국 조각의 성지, 팔봉리 조성 결의문’에 자필 서명을 남겼다. 이 서명은 단지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함께 예술을 살리자”는 다짐의 표현이었다.
현장을 찾은 이들 중 누군가는 “생가가 이렇게 생생할 줄 몰랐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이런 마을에 산다는 건 축복”이라고 말했다. 작지만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팔봉리, 그 조용한 기적은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 마을이 조각의 성지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질문은 거꾸로여야 한다. 이곳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가 성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