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미국 정부가 3개월 만에 엔비디아의 보급형 AI 칩 ‘H20’에 대한 중국 수출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도체 업계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H20에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는 이번 조치로 하반기 실적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최근 블로그를 통해 “H20 판매를 위한 라이선스를 미국 정부로부터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H20은 AI 칩 ‘H100’보다 성능이 낮은 보급형 제품으로, 기존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설계됐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규제 강화에 따라 수출이 중단됐으며, 이번 결정으로 3개월 만에 재개가 가능해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규제 이전까지 H20에 탑재되는 HBM3를 공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수출 재개가 곧 삼성의 관련 매출 확대와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2분기 실적에서 대중 규제에 따른 수익 감소를 언급한 바 있다. 산업연구원의 김양팽 연구위원은 “H20 수출 재개가 삼성전자에 실적 개선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단기 수혜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가 이미 45억 달러(약 6조2000억 원) 규모의 H20 재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분기 분량의 수요를 충당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재고 소진 이후에야 본격적인 추가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HBM3E 등 고사양 제품에 집중하고 있어 H20 수출 재개에 따른 직접적 수혜는 크지 않지만, 중국 내 AI 칩 수요가 늘어나며 고대역폭메모리 전반의 수요가 확대될 경우 간접적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H20 수출 재개가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정책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에서 섣부른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예측 불가능하다”며 “언제든 다시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