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회장 김윤식)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마침내 칼을 뽑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대전 신협중앙회를 상대로 고강도 현장검사를 벌였다. 단순한 정기검사로 보기 어렵다. 연체율 폭등, 부실채권 누적, 통제 실패, 그리고 반복되는 사고. 그동안 쉬쉬하며 쌓여온 내부의 고름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신협은 더 이상 소규모 서민 금융기관이 아니다. 자산 153조원, 전국 865개 조합, 670만 조합원이 이용하는 거대한 상호금융 네트워크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드러난 실적 악화와 사고 다발, 허술한 감독체계는 ‘금융사로서의 최소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이제 당국은 묻는다. “왜 신협만 유독 달라지지 않는가.” 농협과 새마을금고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반면 신협은 무사안일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이번 검사는 경고이자, 최후통첩일 수 있다.
신협의 위기는 숫자부터 말해준다. 2023년 전국 신협의 순손실은 3419억원.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금융기관이 휘청였던 2008년에도 순이익을 기록했던 신협이, 작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냈다. 특히 지역조합 10곳 중 3곳은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니다. 신협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높은 수익률을 좇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몰두했고, 금리가 오르자 부실이 터졌다. 그 부메랑이 지금 돌아오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신협의 부실채권은 7조5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전체 연체율은 6%를 넘었고, 일부 지역 조합은 무려 17~18%에 달했다.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평균 7% 안팎까지 치솟았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0.4~0.5% 수준, NPL 비율은 1%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 격차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상적인 금융기관이라 보기 어려운 수준이며, 일부 조합은 사실상 부실기관으로 분류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신협의 부동산PF 비중은 시중은행보다 높고, 담보평가나 리스크관리 시스템은 한참 뒤처진다. 특히 작은 규모의 지역 조합들이 시장 흐름을 간과하고 고위험 PF에 몰두하면서 타격을 키웠다. 이쯤 되면 건전성뿐 아니라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수익 악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부통제의 실패다. 신협에서는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진다. 조합 이사장의 전횡, 직원 횡령, 금품 수수, 성비위, 직장 내 괴롭힘, 개인정보 유출… 사고유형은 백화점식이다.
2024년 1~5월까지 신협중앙회가 제재를 통보한 사고만 68건. 한 달에 13건 넘게 사고가 터진 셈이다. 하지만 징계는 대부분 ‘견책’ 수준이다. 올해 징계를 받은 임직원 182명 중 중징계를 받은 사람은 17명뿐, 전체의 9%에 불과했다.
신협 중앙회를 이끌고 있는 김윤식 회장은 2018년 직선제로 처음 선출돼 8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는 전국 조직화, 사회공헌 확대, ‘평생 어부바’라는 대중 슬로건을 내세워 국제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키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적 추락과 사고 속출, 내부 통제 부재라는 뼈아픈 현실이 있다. 김 회장이 내놓은 대책 대부분은 ‘사고 이후의 대응’이었다. 사고가 터진 뒤에야 지역본부를 쪼개고 감독관을 늘리는 식이다. PF 부실이 쏟아지고 나서야 자산관리 자회사의 부재를 고민하는 수준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재명 정부는 ‘금융의 공공성’과 ‘기관의 책임성’을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상호금융권의 체질 개선은 그 핵심 축 중 하나다. 신협이 여기에 끝내 발맞추지 못한다면, 정부의 개입 수위는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김윤식 회장은 임기 마지막 해를 맞고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내부 혁신의 칼을 스스로 들어야 한다. 수익성과 건전성을 높이고, 사고를 줄이는 것. 그것만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