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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시선] “죽음은 반복되고, 회장은 웃는다”…이제는 과징금으로라도 책임을 묻는다

책임 회피하는 건설사, 죽음은 계속됐다
형사처벌 한계, 정부는 과징금 부과 검토
경제적 제재 강화로 기업의 경각심 높여
변화하지 않는 기업에는 반드시 끝장볼것

“사장이 감옥 가고, 회장이 이익 챙긴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던진 이 말은 그저 분노 섞인 수사가 아니었다. 사람 한 명이 건설현장에서 죽어나가도 대표이사 한 명만 앞세워 법정에 세우고 나면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현실. 회장은 책임에서 비껴선 채 이익을 누리고, 기업은 다시 입찰에 나서고,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구조이자, 우리 모두가 방조한 ‘시스템적 살인’의 풍경이었다.

 

 

정부가 결국 칼을 다시 들었다. 형사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자각 끝에, 이제는 ‘돈’으로도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30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이같은 방안이 정식 보고된 것은 처음이다. 하루 전 대통령이 “사고가 나면 고액의 경제적 제재를 해야 한다”고 직접 언급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늦었지만 방향은 분명해졌다. 이제는 기업이 가장 민감해하는 지점, 바로 ‘이익’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3년이다. 그러나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영책임자’를 법으로 규정하고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했지만, 현실에서 실질적인 총수에게 책임이 돌아간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법인은 벌금 몇 천만 원으로 끝나고, 대표이사는 변호인을 대동해 짧은 재판을 받고 빠져나온다. 대신 현장의 하청업체, 안전관리자, 공무팀장이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가는 구조가 고착됐다. 법은 있었지만, 책임은 흐려졌다.

 

특히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등 시공능력 상위권 대형 건설사들이 반복적으로 중대재해 사고에 연루되면서 여론은 더 이상 묵과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은 수조 원대 공공·민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브랜드를 유지하며 다음 수주를 준비해왔다. 사회는 이제 그 이름을 ‘건설 명가’가 아니라 ‘중대재해 기업’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과징금 검토는 바로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기업들에게는 단순히 벌금이 아닌, 재무제표에 타격을 줄 경제적 징벌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형사처벌의 실효성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수사는 더디고, 판결은 미약하며, 법원은 솜방망이 구형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그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병행 제재가 필요하다. 기업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압력은 결국 ‘돈’이다. 회장 보고서에 “사망 사고 발생으로 수백억 과징금 예정”이라는 문장이 찍히는 순간, 기업 문화는 비로소 뒤를 돌아볼 가능성이 생긴다.

 

건설사들은 지금 자신들의 이름이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기업, 안전투자 대신 로비와 언론플레이에 집중하는 기업, 총수는 침묵하고 실무자만 법정에 세우는 기업. 이들의 이름은 이제 구글 검색창에도, 산업재해 통계에도, 시민의 기억에도 남게 될 것이다. 죽음을 경시한 기업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정부는 이제야 제대로 된 첫 발을 뗐다. 더는 늦기 전에, 기업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지 못한다면, 곧 모든 것이 무너진다.

 

문채형 뉴스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