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이코노미 이성용기자 | 새벽월드교회, 디다케(교육)와 코이노니아(친교)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였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는 출석 교인들이 급속도록 줄었다. 우리가 흔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5% 미만일 경우 미전도 종족이라고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 대학교 기독 학생수가 3%로 미전도 지역으로 밝혀지면서 한국교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로 인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떠져 나오고 있다.
요즘 한국교회 뜻있는 성도 중에 이제 교회가 다시금 새로워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이란 큰 홍역을 앓았고, 이때 많은 기독인들이 가나안 교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사실인즉,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매우 혼란과 혼미한 상태이다. 이 가운데 한국교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논하고 있고, 앞으로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하고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방문한 분당 새벽월드교회 원로 이승영 목사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 “진리(예수)안에서, 말씀 안에서, 마라나타! 할렐루야! 예수님 아멘이 있었다” 했다.

이승영 목사는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삶 속에서 근신하며 마라나타! 할렐루야! 예수님 아멘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할렐루야! 안에서 할렐루야이다. 그럴 때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지고, 선교, 전도가 이루어지고, 양육이 이루어지고, 서로 사랑의 관계속에서 상호 책임질 때 사역자가 세워져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 갈 것이다" 전했다.
누가 이 어려운 상황속에서 고난을 이기고 방향을 잃고 있는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7년 전, 서울 워커일 호텔에서 세계 리더쉽 세미나가 열렸다. 이때 화두는 누가 이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인가였다.
또한 3년 전에는 우리나라가 독일처럼 급작스럽게 통일이 된다면 통일 이후, 한국교회가 어떻게 북한교회 재건을 할 것인가? 그리고 북한선교를 위한 통합된 원칙과 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이때 한마디로, 과연 지금 한국교회 이대로 될 것인가였다. 교회는 유기체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분들이 모두 교회이다. 주님의 핏 값으로 산 교회이다.
진정한 교회가 이땅에 과연 존재하는가? 질문에 필자는 한교회를 찾았다.
새벽월드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셨고, 성도는 주님의 몸이다. 주님의 가족들은 먼저 교회의 머리를 귀하게 여기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약속했고, 이제 가족같은 교회로 성장을 시작해 오늘의 교회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것이다.
그 사랑의 모습을 예배 중에 보았다. 조양 이승영목사의 멧세지속에서 ”평화/ 화평을 느꼈다. 예배를 통한 케리그마(말씀 선포), 디다케(교육)속에서, 코이노니아(친교/교제)를 보았다. 이날 ‘배미영 장로가 생일을 맞이해 자신을 이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날 참석한 예배자들과 나누는 코이노니아. 빵과 차, 커피 한잔의 나눔은 초대교회 원형교회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날 이승영 원로 목사는 ’요즘 전도 힘들고 사람들이 교회 가길 싫어한다. 왜 사람들이 예배당 가는 것을 싫어할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 안에 사랑이 없고,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 가자고 전도하는데, 왜? 교회를 안갈까?. 왜?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도해도 요즈음은 교회 교인 수가 늘지 않을까? 왜?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긴 방학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큰 교회는 기업으로 가는 것 같아 싫고, 자그마한 교회는 교인이 너무 적어서 썰렁해서, 불친절해서 교회에 가기 싫다. 고 한다. 왜 그럴까? 그렇다. 요즘 교회가 너무 물량주의, 세속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승영 목사는 “요즘 한국교회가 복음적이지 않다. 영적인 영성이 없다”며, “ 오늘 전하는 요한복음처럼, 음녀, 바벨론이 삼키려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
분당 새벽월드교회가 말씀 안에서 잊어져 가는 가족같은 원형교회의 모습을 찾고 있음을 보았다. 예배가 워십이면서, 서비스가 있었다. 디다케(교육)가 있으면서 코이노니아(친교)가 있었다. 이날 원로를 통해 선포되는 메시지도 복음 안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