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코노미 강매화 기자 | 사라심(Sarah Sim)은 한국 패션 산업의 선구자를 넘어, 콘텐츠 산업의 아키텍트로 불린다. 서울대 의류학과 출신으로, 학문적 토대 위에 산업을 읽는 감각을 더한 그는 1980년대 코오롱 회장 직속으로 발탁되어 첨단 신소재 ‘하이포라’를 개발했다.

1990년대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 그는 ‘수입품 같은 국산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보이며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았다. 패션을 ‘제품’이 아니라 ‘콘텐츠’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한국 기성복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 CJ홈쇼핑을 살린 전설, ‘IIDA 프로젝트’
2000년, 후발주자였던 CJ홈쇼핑을 구한 것도 사라심이었다. 그는 디자이너 PB ‘IIDA’를 기획, 5인의 하이엔드 디자이너를 모아 단순 PB가 아닌 ‘브랜드 콘텐츠’를 구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곧바로 매출 반전을 이끌며 GS를 추월했고, CJ를 패션 강자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룹 내부에서도 “CJ를 살린 전설”로 불렸던 IIDA는 15년 후에도 “중국 동반 진출” 논의가 있을 정도로 업계의 레퍼런스로 남아 있다.
◇ 20년 앞서 본 디지털 감각과 AI 슈퍼디자이너
2000년, 정보통신부 ‘해외진출 고급 콘텐츠 공모전’에서 패션업계 단독으로 선정된 그의 제안은 세계 최초 ‘패션 디자인 DB 사이트’였다. 이 실험은 훗날 AI 슈퍼디자이너 특허(제10-2023-0172453호)로 이어졌다.
일본 숍채널에서는 한류 디자이너로 방송 매출 1위를 기록했고, 롯데백화점에서는 SPA 브랜드 ‘피스비사라(Peace Be Sarah)’를 론칭해 단 두 달 만에 온라인 베스트셀러로 올려놨다. ZARA 사장단이 극찬한 이 브랜드는 한국형 패션코스메틱 기반의 시작이었다.
◇ MFL(More For Less) 전략, 합리적 가치로 글로벌 도전장을 내다
사라심의 전략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MFL(More For Less), 즉 고감성·고기능·고가치 제품을 합리적 가치로 제안하는 모델로 유통 혁신을 주도해왔다.
2007년 롯데와 함께한 첫 번째 글로벌 제조형 SPA 브랜드, 2009년 ‘피스비사라’를 통해 선보인 두 번째 MFL 프로젝트는 자라(ZARA)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단순히 “싸게 파는 SPA”가 아니라, 감성과 기술을 결합한 합리적 프리미엄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다.
◇ O4O와 감성기술, 경험을 기획하는 디자이너
사라심은 유통의 흐름 또한 예견했다. 그는 O4O(Online for Offline) 기반의 디지털 체험관, AI 커머스, RFID 트래킹, AR 콘텐츠 등을 결합해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리테일 혁신을 설계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국내 주요 유통 대기업들과 협업 논의로 이어지고 있으며, 사라심을 단순 디자이너가 아닌 경험 기획자로 자리매김시켰다.
◇ 콘텐츠 IP + 브랜드 플랫폼 = 사라심 전략
그의 독보적인 지점은 브랜드 안에 콘텐츠 IP를 심는 방식이다. 대표 캐릭터 ‘사라프렌즈(Sarah Friends)’는 단순 굿즈를 넘어 브랜드 감성과 세계관을 대변하는 자산으로 성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팝업스토어, AR 게임형 커머스, 글로벌 K-콘텐츠 협업은 ‘브랜드=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와 ESG 확장
사라심은 이미 코스맥스 등 글로벌 벤더사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디자인–제조–유통까지 수직계열화된 브랜드 플랫폼을 구축했다. ESG 경영, AI 기반 설계, 글로벌 벤더 동시 생산, 온·오프라인 유통 병행은 유니콘 브랜드로의 성장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 왜 지금, 다시 사라심인가
AI가 브랜드를 대체하고, 소비자가 플랫폼이 되는 시대. 2000년대 초부터 산업 전환을 설계해온 사라심은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존재다.
그의 철학은 늘 같았다. “패션은 기술이자 감성이다.” 이제 그 철학은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을 넘어 K-콘텐츠 산업화라는 거대한 퍼즐을 완성해가고 있다.
서울대 의류학과에서 시작해 글로벌 산업을 리디자인한 디자이너, 이제는 K-브랜드 플랫폼을 선도하는 미래형 CEO. 사라심의 귀환은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그것은 곧 AI 시대, 감성기술로 세계를 디자인하는 ‘정답의 컴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