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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ABFF 컨벤션&대한민국 분재 대전, 아쉬움 품은 폐막… 신안의 분재 무대는 계속된다

- 300여 점의 분재 작품 전시 세대와 시간이 담긴 명품 한자리에
- 아시아태평양 10개국 대표단 참여 WBFF·바오딩 가든과 MOU 체결
- 자생목·분경·고분재 등 다양한 작품 구성 신안 정원의 가치 재조명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신안군이 주최하고 (사)한국분재협회가 주관한 ‘2025 ABFF 컨벤션&대한민국 분재 대전’이 지난 7일부터 닷새간 1004섬 분재정원에서 펼쳐지며 또 하나의 풍경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전시는 끝났지만, 관람객들이 떠난 자리에는 “조금 더 보고 싶었다”는 말들이 여전히 맴돈다. 한편의 전시가 아니라, ‘섬 전체가 하나의 정원’이 되어버린 듯한 감정이 남아서다.

 

신안군은 그동안 ‘신안의 해상정원’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섬의 자연과 정원 문화를 결합한 시도를 꾸준히 이어왔다.

 

 

제14회 대한민국 분재 청송 작품전, 황해교류박물관과의 협력 전시, 그리고 자생종 연구와 정원 예술 활성화까지 단계적으로 축적돼 온 흐름이 이번 대전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행사가 분재 전시를 넘어, 신안군이 수십 년간 차근차근 다져온 정원 문화가 ‘정점의 순간’을 맞이한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시장은 시작부터 깊이가 달랐다. 제주를 비롯해 국내 각지에서 예선을 거쳐 온 300여 점의 명품 분재가 정원을 채웠고, 그 안에는 ‘시간을 견딘 나무들’이 있었다.

 

20억 원대 가치가 매겨진 노송, 중국에서 130년 동안 길러진 고분재, 100년 세월을 담은 단풍 분재 등,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록’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이 늘어서 관람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작품들 사이에서 한 작가가 꺼낸 말은 더 깊은 의미를 남겼다. “우리 집은 장농에 이불이 없다. 대신 화분만 쌓여 있지요.” 가업처럼 분재를 이어온 집안이 어떻게 나무와 시간을 품어왔는지 보여주는 인상적인 한마디였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도 기술의 결과라기보다, 세대와 세월이 고스란히 겹쳐 쌓인 결실에 가까웠다.

 

소사나무와 마삭줄을 중심으로 한 지역 자생종 역시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늘게 흐르는 잔가지와 자연스러운 꺾임만으로도 한 폭의 먹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소사나무, 해풍을 맞으며 자란 마삭줄의 거친 수피는 남도 특유의 자연미를 그대로 드러냈다. 곰솔·사철나무 등 신안 자생 수종도 ‘섬에서 길러진 자연의 기운’을 담아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문치호 (사)한국분재협회 중앙회장은 분재의 본질을 짚으며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분재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나무 예술입니다. 한 그루에 담긴 시간과 손길이 세대를 관통하지요.” 이어 “나무와 화분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며 “전시가 끝나면 나무와 화분을 다시 분리해 휴식기를 주고, 다음 연출을 준비하는 과정 전체가 자연예술이라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전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단연 국제 무대에서의 확장이었다. 전시 기간 동안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0개국 분재 대표들이 신안을 찾았고, 세계분재우호연맹(WBFF)과 중국 바오딩 가든과 공식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장면은 서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안군이 이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분재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올라섰다는 선언에 가깝다. 협약 이후에는 공동 전시, 학술연구, 자생종 재배 기술 교류 등 구체적인 협력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신안 분재정원의 국제적 위상은 실제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이 같은 국제적 도약 속에서도, 전시장은 여전히 ‘섬의 풍경’처럼 조용했다. 바람길과 빛의 방향, 관람객의 시야 높이까지 계산해 배치된 작품들은 시간대마다 다른 표정을 보였다.

 

아침의 빛은 잔가지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오후의 빛은 수피의 결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같은 나무인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지?”라는 관람객의 말처럼, 작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진 얼굴을 보여주며 ‘살아 있는 정원’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유독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가거도의 자연 경관을 축소해 옮긴 분경(盆景)이다. 해안 절벽선, 바람결, 작은 섬 능선까지 축소해 담아낸 작품은 관람객마다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가거도로도 보이고, 다른 섬으로도 보입니다. 느끼는 대로 보면 됩니다.” 문치호 회장의 이 설명은 분경이라는 예술의 폭을 넓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행사를 찾은 관광객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서울·대구 등 대도시에서 온 이들은 “섬까지 와서 분재를 본다는 게 특별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전시관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분재를 마주하는 느낌”이라며 사진을 수십 장씩 남겼다.

 

해외에서 온 관람객들은 신안 자생목을 활용한 작품들을 “아시아태평양의 새로운 분재 정체성”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큰 무리 없이 행사가 마무리되어 다행”이라며 “이번 대전을 계기로 1004섬 분재정원을 세계적인 명품 정원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분재는 조형물을 넘어서 생명을 지닌 예술이기 때문에, 관리와 연구, 그리고 교류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전시에 남은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1004섬 분재정원은 또 다른 계절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신안군의 대표 겨울 축제인 ‘섬 겨울꽃 축제’가 12월 19일 열린다.

 

2만 그루의 애기동백에서 피어나는 4000만 송이의 붉은 꽃이 분재정원 위로 겹겹이 내려앉으면, 섬 전체는 또 다른 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분재가 남긴 고요한 여운 위로 동백꽃의 붉은 결이 더해지며, 신안의 해상정원은 다시 한 번 새로운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