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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의 떨림을 기록하다… 숲 연구가 황호림, 첫 시집 펴내

- 25년 숲 연구 끝에 꺼내든 또 다른 언어, 시(詩)
- 왕자귀나무 연구자에서 시인으로, 숲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

 

지이코노미 김정훈 기자 | 과학의 언어로 숲을 설명해온 연구자가 이번에는 시의 언어를 택했다.

 

수치와 분류, 분석과 검증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숲을 바라봐온 황호림 박사가 첫 시집 『숲에 가면 나도 시인』(책나무출판사)을 펴냈다. 숲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이가 숲을 노래의 주인공으로 불러낸 셈이다.

 

황 박사는 전남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겸임교수이자 동북아숲문화원 원장으로 활동하며, 국내 숲 연구 현장에서 오랜 시간 발로 뛰어온 연구자다. 『라온제나』, 『우리동네 숲 돋보기』, 『숲을 듣다』, 『왕자귀나무』 등 전문서와 에세이를 통해 숲의 가치와 생태적 의미를 대중에게 전해왔다. 특히 희귀식물인 ‘왕자귀나무’ 연구에서는 독보적인 성과를 쌓아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번 작업에서는 연구자의 언어를 한 발 뒤로 물렸다. 서문에는 “아무리 정교한 과학의 언어라도 이름 없는 풀잎 하나의 미세한 떨림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는 문장이 놓였다. 수십 년 동안 숲을 분석하고 기록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보다 감각이 먼저 다가왔다는 고백이다.

 

이와 함께 숲을 더 이상 분석의 대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도 분명해졌다. 숲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언어가 태어나는 자리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번 시집 역시 ‘연구 결과’가 아닌 ‘숲의 눈으로 옮긴 기록’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숲에 가면 나도 시인』은 자연을 찬미하는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는 식물 분류학과 생태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다만 그 지식은 설명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미지와 리듬, 비유 속에 스며든다. ‘꽃쟁이는 사디스트’, ‘숲으로 출근하는 남자’ 같은 제목에서는 미묘한 유머가 읽히고, 그 안에는 생명에 대한 긴장감과 경외가 함께 놓여 있다.

 

황 박사는 왕자귀나무의 잎맥과 노루귀의 솜털, 복수초의 개화 시기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생명의 질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생명의 무게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숨결을 얼마나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숲에서 배웠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이 시선은 시집 전반을 관통하며, 독자에게 숲을 ‘관찰하는 대상’이 아닌 ‘마주 서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됐다. 1부 ‘들꽃의 언어’와 2부 ‘나무의 초상’에서는 복수초, 얼레지, 히어리 등 우리 숲을 이루는 식물들이 등장한다. 각 식물은 의인화된 존재로 등장하지만, 생태적 특성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3부 ‘순환의 숲’에서는 계절의 반복과 생명의 순환을 담담히 짚고, 4부 ‘추억의 숲길’에서는 연구자의 삶과 겹쳐진 숲의 기억들이 조용히 이어진다.

 

현재 황 박사는 유튜브 채널 ‘숲PRO TV’를 통해 대중과 숲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현장에서 촬영한 숲 영상과 해설을 통해 전문 지식을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역시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며 “이 시집이 독자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숲의 속도를 느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차가운 계절의 초입, 『숲에 가면 나도 시인』은 빠른 언어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다른 리듬을 건넨다. 25년 넘게 숲을 연구해온 한 전문가가 시를 통해 내민 이 느린 초록의 문장들은, 설명보다 여백으로 숲을 기억하게 만든다. 시집은 현재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